여름의 끝자락은 항상 초라하고 쓸쓸하다. 해마다 가을은 서둘러 찾아오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결에 가을냄새가 제법 묻어 난다.
거리의 나무도 하루가 다르게 빛깔을 바꾸며 계절에 순응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먼 산도 푸르른 여름 옷을 벗고 울긋불긋 가을 옷으로 바꿔 입고 있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이무렵을 경옥은 싫어했다.
마치 떠나는 애인을 붙잡지 못하고 애태우는 연인의 마음을 닮아 슬프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했고 점점 젊음을 상실해가는 자신의 나이를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그에게서 연락이 없다. 혹시 몸이 아픈 걸까. 아님 전화 걸 여유도 없이 바빠진 걸까.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그가 보고 싶다.
경옥은 그날 있었던 입맞춤을 떠올렸다. 그의 입술에서 전해진 열기는 대단했다.
두사람은 잠시 이성에 눈을 감고 몸이 이끄는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등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경옥은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마음은 진심으로 그를 원했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의 손을 몸으로 느낀 순간 탄력을 잃고 늘어진 자신의 몸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열일곱 소녀로 그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역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경옥의 뜻에 따라주었다.
어쩌면 그 일 때문에 쑥쓰러워 전화를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미치자 경옥은 서둘러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없었다.
항상 전화 걸 틈을 주지 않고 먼저 전화를 걸었던 그에게 익숙해져 버린 걸까.
막상 전화를 하려고 생각하니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이 깊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경옥은 심호흡을 하고 그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조급해진 경옥은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조교로 보이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