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시간만큼 다시 쌓이는 먼지를 털어내고. 허물처럼 벗어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가족들을 위해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을 짓고. 잠자기 전까지 TV를 보며 경옥은 그를 기다렸다. 아무리 바빠도 경옥을 잊지않고 챙겨주던 그가 지금은 부재중이다.
고작 7박 8일간의 출장인데............... 왜 이리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다시 돌아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도중 간간히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 잘있었지?"
“ 오빠, 감기 들었어?”
“ 응, 근데 이제 괜찮아.”
“ 오자마자 경옥이 보고 싶었는데, 감기 옮기면 안되잖아.”
“ 오빠가 옮겨준다면 감기라도 행복할 거 같은데.”
“ 경옥아,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너도 알잖아.”
“ 농담이야. 오빠.”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료했던 마음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 오빠. 어딘데?”
“ 지금 나올 수 있지?”
경옥이 차문을 열때까지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경옥이 안전벨트를 매자 말없이 달렸다. 한참 뒤에 한적한 갓길에 차를 세웠다.
" 오빠! 컨디션이 안좋아 보여." 대답대신 괜찮다는 듯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 경옥이 남편에게 늘 빚을 진 기분이 들어.”
“ 무슨 소리야. 오빠. 우리 나쁜짓 한적 없잖아.”
“ 어떤게 나쁜짓인데?”
“ 오빠, 오늘 이상하네,”
“ 울 와이프가 나더러 그러더라. 돈을 주고 산 여자와 몸을 섞는 것은 차라리 용서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맺어지는 건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말야.”
“ 아내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그래?”
“ 아니. 그말을 듣는 순간 아내에게 미안한 게 아니라 경옥이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 참 희한하지?“
“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긴해. 그러나 오빠를 만나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는게 사실이야.”
그는 말없이 경옥을 품에 안았다. 그의 품속은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나른한 느낌과도 같았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마치 낡은 트럭의 엔진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처럼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귀에 들려왔다.
가끔 한적한 유원지에서 들었던 숨소리보다 더 거친 숨소리가 가까이 느껴졌다.
경옥은 그가 자신을 갖고 싶은데, 그런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느라 가뿐 숨을 몰아쉰다고 생각하며 모른척 했다.
그러나 그의 듬직한 손이 자신의 등을 어루만질때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하고도 감미로운 쾌감을 느꼈다.
“ 경옥아, 사랑해.”
귓가에 그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귓바퀴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고, 스르르 눈이 감겼다. 남편에게서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황홀함이 온몸에 전해졌다.
이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활짝 꽃잎이 열린다는 수련처럼 경옥의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경옥의 입술을 덮었다. 뜨겁지만 가벼운 입맞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