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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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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줏어왔다


BY 캐슬 2004-01-19

 시간은 내 맘속의 울화를 매일 조금씩 삭혀가고 있다

나는 내안의 나에게 수없이 '감정을 자제'하라는 암시를 주어서 나의 불같은 성정을  타이른다.

그럴수록 영민의 화려한 제스츄어가, 말빨이, 두어깨 위에 내려 앉은 돈이라는 것의 무게가다소 과장된 그놈의 말 한마디가 살아서 내게로 달려드는 것 같은 환상에 몸서리를 친다.

영민이 놈의 제스츄어는 대략 이렇다.

"아 아버지 그건 그런게 아니고"

"아 아니요 형님."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쑥불쑥 지갑을 열어 호기롭게 뿌려대는 그놈의 화려한 돈쓰기는 보는 이들을 경악케한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렇게 쓸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같이 초라한 말단 공무원이 보면 솔직히 부러워 죽을 일이다.

로또 복권이라도 걸리면 모를까? 말이다.

가끔 친척들과의 모임에라도 가면 영민이 놈은 더 기세등등이다.

영민이 놈의 호기로운 행동들은 며칠 후면 어김없이 소문의 발을 달고 여기저기를 날아 다니기 시작한다.

'오민식씨네 둘째 아들놈은 무지 성공했는 모양이더라'라고 말이다.

그러다 일가 친척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우리 철없는 어머니께서는 자랑하기에 바쁘시다.

"우리 둘째가요? 저기 어디에 수억짜리 건물도 짓고, 그랜져 신형으로타고, 50평짜리 아파트에서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른다오."

뒤에서 듣는 큰아들인 나! 오석민 큰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다.

나와 마누라는 병신 쪼다된 기분 만끽하다 그냥 돌아서는거다.

우리는 없는 놈'지 섦음 탄다'는 옛어른들 말씀 가슴에 새기며 '섦음 타는 치사한 인간의모습' 안 들키려고 조용히 빠져 나오고는 했다.

그럴때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마누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집 형제는 우애있기는 다 틀렸어. 어머니가 저렇게 형제들을 갈라 놓는다고, 큰아들 앞에 세워두고 바보 만들고 둘째아들 치켜세워 남는게 뭘까? 에고 철없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야. 그소리 듣고도 가만 계시니, 이상한 집이야 진짜."

나는 마누라의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한다.

마누라의 말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엄니 철없는 딸하나 더 있다 생각하고 산다 살어."

휴~

마누라는 또 그렇게 긴 한숨속에 섭섭함을 삭힌다.

 

 토요일이다.

주5일 근무가 정해지고 우리 부서는 토요일에는 격주로 근무를 한다.

나는 오늘 쉬는 날이라 모처럼 마누라하고 등산이라도 가볼려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삐~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누구세요"

가벼운 깃털처럼 대문을 따며

"아버님이세요"

마누라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오냐 큰애 있냐?"

"네. 아버님"

아버지는 이미 내가 오늘 쉬는 날임을 아시고 오신 모양이다.

"어서 오이소. 아침은요"

통상적인 인사를 하고 아버지와 나는 마주 앉았다.

마누라는 커피 한잔을  아버지 앞에 내려 놓는다.

커피 한모금 입에 물고 아버지는 조금은 망설이다 예기를 시작하신다.

"너거 엄마가 이제 나이도 있고, 시장도 멀고 해서, 제사를 못지낸단다. 너거 보고 꼭 지내라는 건 아니지만, 너희가 꼭 안지낸다면 버리든지."

미리 마누라에게 언질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수류탄처럼 터져서 공중분해라도 돼버렸을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이게 말이야 뭐야'

속으로 궁시렁대며

"그래서요"

나는 불손하게 되물었다.

'이럴땐 맏이 대접하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순간 마누라와 눈이 마주친 나는 말을 할 시기를 한 박자 놓쳐버렸다.

어색한 분위기와 위태로운 분위기가 아버지와 나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마누라가 우리 두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들어선 건 그때였다.

"아버님! 제사를 버리다니요. 어머님이 말씀하셨는데요. 애비한테 제가  예기 했드랬습니다. 애비가 저희가 지내자고 하네요. 그래도 아버님! 제사를 주실려면 그렇게 말씀하시는게 아니고, 내가 너무 나이가 많고, 장보기도 힘들고, 어차피 너희가 지낼거 좀 일찍 가져가는게 어떠냐고 하셔야지, 그렇게 협박하듯이 버린다고 하시다니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마누라는 숨을 쉬기나 하는지  이어서 말을 한다.

"제사는 정성이라는데 지낼때마다 이러쿵 저러쿵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제가 지내겠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지내는데 잘한다 못한다 아무도 이유 달지 마세요."

마누라는 명쾌하게 답을 내려 버린다.

아버지도 나도 멍하니 얼굴을 마주 볼 뿐이다.

마누라는 언제 저 말들을 준비했을까?.

나는 그저 마누라가 놀랍기만 할 뿐이다.

 

마누라는 그렇게 제사 하나를 줏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