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생각할 틈도 없이 그 시커멓고 커다란 거구의 여자는 우리에게 다가와, 정숙을 내려다 보다 눈높이를 맞추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는 예의를 갖춘 후... 입을 뗀다.
'안..뇽..하..쇄...여?'
-'......???'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할까....
아들이 커다란 쇠망치로 내 뒷통수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면...아니...차를 시속120킬로로 아들이 날 들이받았다면....
차라리..차라리...그런 상황이었다면....
'반..깝...슙...니...따'
'....어어...어...'
-'.....이....이....??'
'Boa tarde, Como vai? Muito Prazer.'
'어..엄마...아버지...얘가 내가 말한 걔야....인사해...'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차안에서 어떻게 했는지...정숙과 남편은 안쓰러진 것만해도 정말 장하고 잘 했다 싶을만큼 강한 충격을 받고 몽롱한 상태로 집에 들어섰다.
준비한 음식냄새가 집안전체에 아직도 진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인식할만큼 의식의 여유가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정숙은 아직도 말문을 떼지 못하는 남편보다 먼저 그 거구의 여자에게 잠깐 눈길을 준다음 정우를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 '너...너....뭐야??'
'엄마...일단 제 말좀 들어봐...놀랄 것도 없어요...내가 말한 그대로니까...'
-'......뭐?? 뭐?? '
'후~~~엄마 놀라신 건 알지만...저 파올라랑 결혼해요'
- '엉? 얘...정우야...뭐라고.....? 결혼하고 싶다...도.. 아니고... 한다고??'누구 맘대로??'
'엄마...쟤..생긴 거 생각하지 말고...그거는 제외시켜 두고..쟤..생긴 건 저래도 정말 한국적인 여자야....보수적이고...착하고..어른들 알고...'
정숙은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우의 등을 잇는 힘껏 후려친다.
분이 안풀려 옆에 있던 베개며 쿠션을 두리번 거리다 힘껏 정우에게 던지며 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너...쟤랑 결혼할꺼면...나 죽거든 해라......아니...나 죽더라도 안된다..너 안그랬잖아...너 영국에서 뭐했니? 너 왜 이래? 정말 결혼할 맘은 아니지?? 빨리 보내...빨리 가라고 해...아니다...너두 가..너두 그냥 다시 가서 정신 차리고 와!!!!!!!'
남편이 방으로 주춤거리며 들어서더니 역시 소리를 낮췄지만 엄하게 다짐을 받는다.
'정우야...아버지랑 얘기좀 하자...'
'아버지...일단 결혼 승락같은 거 그거 나중 일이고...쟤...우리집 손님 이잖아요..집에 온 손님인데 이렇게 모욕을 줘두 돼요?'
-'그러는 너는? 너는 우리한테 이래두 되고?? 일단...쟤랑 결혼할 생각으로 온 거면...빨리 가..그냥 가...제발..둘이 그냥 가!!'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
'정우야...아버지랑 얘기좀 하자...'
정숙은 현기증이 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벽을 짚고 거실로 나간다.
-'저기요...저기....파울라? 난 그 쪽 말 모르니까 그냥 얘기하는데...결혼은 못해요...알았죠? 우리 정우랑 결혼같은 건 절대 못해요..그냥 손님으로 있다 가요..그것까지 말리진 않을테니...'
밤새 뒤척인 것 같은데....깨어보니 이미 시계는 10시가 넘어있었다.
.......
밤새 정숙은 꿈을 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