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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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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택시


BY 이마주 2004-08-01

 

어디서 구해왔는지 미은이는 뽀얀 우유빛의 풍선을 가져왔다.

바의 이곳저곳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풍선다발을 매다느라 사뭇 의미심장한 표정까지 지어가며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애를쓰는 것은 웨이터 형들이었다.

평상시 보다 두시간이나 일찍 출근한데다가 오자마자 풍선을 불기 시작했으니 오죽할까…

간신히 풍선을 불자, 이번엔 하얀색, 공주같은 핑크색, 그리고 가을하늘 처럼 고운 하늘색의 리본이 등장했다.

줄의 리본을 붙들고 가게의 이끝에서 저끝으로 미은이의 지시에 따라 가게 식구들이 겅중겅중 뛰어다닌 결과 정말 멋진 꾸밈이 완성되었다.

 

미은이는 땀으로 범벅된 나의 옆구리를 살살 간지르며 물었다.

 

"오빠, 장미꽃은 어디있어? ?"

 

"꽃이라니? 무슨…? , 깜빡했다."

 

작은 꼬마의 하얀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변해다.

 

"뭐라고? 깜빡? 오빠!! 빨랑 갔다왔!!"

 

무서운 미은이의 소리에 택시를, 평상시에는 절대 타지도 않던 택시까지 집어타고 꽃집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하필이면 길이 꽉막혀있을건 뭐람.

사거리 신호등을 사이로 지루하리 만큼 오랜 시간이 정체되는 했다.

생각없이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려서 바라본 길거리는 한산해 보였다.

주중의 낮시간대가 의례이 그렇듯이.

 

저만치 멀리서 중년여자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던 여자는 손수건을 꺼내어 눈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중년여자는…

선생님, 아버지의 아내인 분이었다.

 

시간에 길거리를 분이 울며 걷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번이나 눈을 비벼 바라보았지만 분명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선생님은 순식간에 내가 타고 있던 택시를 지나쳐서 걸어가고 계셨다.

 

황급히 윈도우를 내리고 선생님을 불렀다.

이대로 그냥 지나치면 안될 같았다.

 

"선생님!"

 

못들었는지 선생님은 점점 멀어졌고 하필이면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은 고개를 숙이고 걷고 계시진 않았지만 뒷모습만으로도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채 길을 걷고있음엔 틀림없었다.

 

울고 계셨을까?

 

한동안 동생과의 메신져도 뜸하게 하고있던 차라 아버지나 선생님이 어떤지 도통 알길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기엔 아직도 옹졸하고 용기가 없었다.

 

동생의 핸드폰이 한참 만에 반응을 한다.

 

"여보세요? 형인데 점심시간이지?"

 

"."

 

동생녀석의 무감각한 목소리가 핸드폰 넘어로 들렸다.

 

"목소리가 왜그래? 밥은 먹었어?"

 

""

 

"어쭈, 자식, 임마. 목소리가 왜그러냐니까? 요즘 메신져 안들어와? 그저께 형이 보낸 이멜은 봤니? 별일없어?"

 

""

 

심드렁한 대답들이 이어졌다.

 

"정말 집에 별일 없어?"

 

"! 졸라 짜증나게 자꾸 그래? 오늘 저녁때 이멜 보낼게. 그럼되잖아.?"

 

신경질 적인 병석이의 반응에 또다른 자괴감이 들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아이같이 느껴진 녀석이 이제 사춘기인지 요즘은 예전같지가 않다, 이럴때 함께 있어줘야 할거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내자신이 머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말버릇이 그게 뭐야? 공부는 잘…."

 

", 수업들어가야 . 끊어. ."

 

통화음이 끊어졌다.

왠지모를 불안함이 오랫동안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고 있게했다.

오늘 하루만 가족들 걱정을 미룰 밖에 없었다.

무언가 있긴 했지만 시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었기에 일단은 웅주형의 생일이벤트에 정신을 집중시킬 때였다.

 

장미는 이미 포장되어있었다.

한번에 이렇게 많은 장미를 산적은 없었던 같았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도와주지않았다면 차에 실는 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장미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장미로 만든 부케가 있었다.

 

"이거 꼬마아가씨가 특별히 부탁한건데 맘에 들지 모르겠네.. 노총각 장가보내기 작전이라면서요? "

 

꽃가게 아주머니는 넉넉한 웃음으로 말했다.

돈을 치루러 지갑을 꺼내는데 이미 받았다고 말을 한다.

 

", 이거 아가씨가 이미 계산했어요."

 

장미의 화원에 들어간것같이 택시안은 온통 장미내음으로 가득찼다.

미은이의 전화가 즈음이었다.

 

"오빠, 어디야? 장미 실었어? 부케는?"

 

", 여기 다있어. 근데 무슨 돈이 있어서 많은 장미값을 냈다는 거야?"

 

"~ 그거. 실은 울엄마 남편이 나한테 잘보이려고 비상용 카드하나 준게 있었거든. 왠만하면 그거 안쓰려고 했는데 지난번에 오빠가 반지샀잖아. 나도 웅주아저씨랑 언니한테 뭔가 하고싶었거든… 헤헤"

 

"너…,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알았지? 오빠가 해줄수있는건 오빠가 해주고 싶어. 미은아.암튼 빨리갈게. 준비는 됐어?"

 

"당근당근.빨리 오기나 ."

 

영업시간이 정도밖에 남지않았다.

가게는 한층 로맨틱한 분위기가 났다.

그대로 결혼식을 올릴 있을만큼 장미와 풍선으로 멋지게 꾸며져있다.

 

Sunny누나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눈이 휘둥그래져서 예쁘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런 누나를 보고 내가 놀란걸 누나는 모르는 것 같았다.

 

굵게 웨이브진 머리에 전에 미은이와 같이 샀다는 하얀원피스를 입고있었다.

정말 예뻤다.

아니, 아름답다는 평상시에 쓰기는 어색한 단어가 누나에게 제대로 어울려 보였다.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가게로 들어서던 웅주형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입던 검정옷이 아닌 정말 멋진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있었다.

오늘따라 형역시 새신랑처럼 보인 내가 너무 둘의 관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길 원함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