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란게 이렇게 휑덩그렁하게 만들다니......
도저히 이 집안에 더이상은 버티고 있을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다.
그러나, 막상 나갈려니
'어디로 가나?'
그대로 소파에 풀썩 앉아 버렸다.
결혼하곤 제대로 정기적인 만남을 가진 친구 하나 없고 겨우 일년에 전화 한두통 주고 받는게 고작인 친구들
걔네들도 남편에 자식에 시집이란것에 그렇게 자아를 분산해 정작 자기의 이름따위는 까맣게 잊고 그렇게들 비슷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게다.
난 이제 나를 찾고 싶은데
그애들 친구들이 보고픈데 아니 어쩜 나의 세계를 갖고픈 건지도 모르지
아파트에 살면서 사귄 사람들은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 흔한 이사탓도 있겠지만
모두들 가식투성이다.
잘난척
많은척
이쁜척
벗겨보면 별것 아닌것들이 물론 나역시 그렇겠지만
아! 빨래
주섬주섬 바구니에 옮겨 놓으며 창을 내다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부을 기세다.
아파트가 좋긴 하지 비가 와도 빨래 널 수 있지, 놀다가 비 온다고 호들갑 안떨어도 되지
습한바람
습기가 잔뜩 벤 바람이 코끝에 살갗에 느껴진다.
결혼전에는 비오는게 참 싫었었는데
결혼후에는 은근히 비오는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전자는 직장때문이었을거구
후자는 비오면 꼼짝않고 집에 있으면 되니까 ! 그 하나뿐일까?
아니 커피한잔에 베란다의 철제 티테이블에 앉아 그 누구도 감히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의 뒤안길을 거닐수 있기 때문이리라
H를 느끼며.....
이렇게 날씨가 꿀꿀해지면 H가 더욱 그립다.
여기에 비까지 더한다면 나는 아마 소리없이 침대로 가 마음아픈 몸을 뉘어야 하리라
H는 바람이 부는날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붉게노을진 석양을 볼때도....
아침의 통화뒤론 전화가 없다.
아니 가끔오는 그의 전화는 거의 비슷한 시간 하루 두번도 아니고 꼭 한번
그것으로끝이다.
물론 내가 할 수 도 있지만
난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하고 두가지 일을 다 잟는 스타일이 아닌걸 알기
때문에 그냥 H의 쉼터로 이렇게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항상 처음 시작이 두려운 것이다.
내가 한번전화하기 시작하면 그도 나의 전화에 길들여 질테고
그러다 보면 서로 길들여짐에 따른 책임감 혹은 길들인 것에 대한 소유욕 ....
이제 그런 정열은 없다.
배가 고픈것 같기두 하고
허전하니 다시 커피 한잔을 타 베란다에 앉았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또롱또롱 앉기 시작한다.
H......
그를 만난건
내가 먼저였다.
22살때인가
주차장 근처 패스트푸드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항상 오후 6시만 되면 그 사람 아니 정확히 그 빨간 차가 우리 가게앞에 섰다.
그리고 아가씨 한명, 남자 2명 그렇게 정원이 차면 차는 가버렸다.
하루 이틀, 그 차주인을 살짝살짝 쓰윽 쳐다보게 되고
항상 깔끔한 흰색셔츠에 까무잡잡한 피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빳빳한 까만머리털
왜 너무 돼지털이라서 스포츠로 깍으면 쭈볏쭈볏 일어서 버리는
'눈이 좀 매섭긴 하지만 잘 생겼네'
그렇게 그에게 조금씩 길 들여지고
약 1년을 그렇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말도 한마디 못해보고
그렇게 알바자리는 끝났다. 취직시험에 합격이 된거다.
알바를 계속 하고 싶었다.
그를 그렇게라도 매일 보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난 그와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채
이별에만 슬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