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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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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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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느껴진 아침


BY 아정(雅正) 2003-09-19

밀물처럼 그렇게 하나 둘 빠져 나가고 난 집이란 공간은 그냥 휑하니 사각 시멘트 큐브일뿐......

 

커피물을 올리고 프림을 뺀 커피를 탄다.

나를 위해 바치는 유일한 시간

 

모든 집기가 나온 씽크대도 어수선한 식탁도 과감히 외면할 수 있는 시간

보라빛 작은 꽃잎과 녹두빛 잎이 잘 조화된 라일락이 그려진 제일 맘에 드는 찻잔을 받쳐 들고 (입을 대는 맞은편 컵 안쪽에 똑같은 작은 그림이 있어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라일락을

감상할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소슬하니 찬 바람이 살갗에 닿는다.

컴옆의 베란다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었다.

여름내내 열려 있었는데 절로 손이 가 닫아 버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보일러도 잠깐 돌린기억이 난다.

길다란 화분위의 수북하니 탐스런 스킨 잎끝마다 물방울이 반짝인다.

실내의 잎사귀에 웬 이슬? 

항상 궁금했었건만 꽃집에 가면 꼭 물어보리라 생각을 수십번도 더 했었는데,  지금까지 이러고 있은 이유가 대체 뭔지

 

바탕화면이 맘에 든다.

오늘은 핏빛장미꽃이파리들이네 그 속에 한 송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듯 하다.

제일 먼저 음악싸이트

귀에 담기지도 않는 최신곡 걸어놓고

그래도 혹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쪽팔리지 않기 위해 아줌마냄새 김치냄새 가리기 위해

단골 검색싸이트

메일확인

'젠장 스팸가드 설치하면 뭐해 죄다 광고메일 '

 뭐 사이트만 탓 할 수도 없다 이벤트인지 뭔지 참여한다고 회원가입한 사이트들의 메일도 제법 된다. 몇개 추려서 읽어주고 몽땅 휴지통에 다시 휴지통 비우고, 홈으로 돌아와

새로운 눈에 띄는게 없나 쭈욱 쭉

 이벤트공지란 클릭

'흠!  다한거네'

 로그아웃

다시 다른 아이디로 접속 내가 꾸미는 작은 홈피,( 블로그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지만)

로 들어간다.

"비밀공간"

아무도 모르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아는

그래서 어쩜 더 솔직한 나의 모습 내가 알지 못하는 내면의 내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확실한 본명도 사는곳도 직업도 얼굴은 더더구나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 친구(?)가 되는

서로 위로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가장된 이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왜일까? 생각해 봤는데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아서인것 같다. 서로 피해주는일 없고 단지 기쁨만 주니

그런데 왜 현실은 그리되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이 선한것임을 가끔 믿으려 한다.

그새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아가씨적 같으면 그 비싼 카페 커피두 남겨두고 일어섰을텐데

"홀짝"

다 비웠다.

 

"띠리리리리 띠띠띠띠띠띠 띠리리리리 ~  "

 

4화음 꼬진헨폰이 울리고

번호.....확인......  가슴이 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목소리 가다듬고

폰을 열었다. 최대한 밝은 톤으로

"정확하구만"

"뭐해?"

"커피마시고 컴앞에"

"고스톱?"

" 못하는 줄 알면서 펜관리중"

"아~! 그 씰데없는 홈페이진가 그거? "

"그거라도 안하면 뭐해"

"오늘 점심 같이 먹자"

머리가 아파온다. 몇달을 만나지 않았다.

아무일도 없는데 그냥 피하기만 한다.

보고는 싶은데.....

이러면 안 될것 같아서....

"엥! 오늘 안돼 아파트 아줌마들이랑 칼국수 해 먹기로 했어"

"알았다 "

"응! "

"끊는다"

"응! "

"뭐그래"

"알았다구  다음에 내가 살께"

"꼭이다"

"그래 수고하구 ...끊을께"

 

유일한 피신처, 이나이까지 가슴이 뛰는 사람, 내가 아플때 곁에 앉혀두고 싶은 사람,  죽음이 오는 그 순간에도 서로를 떠 올리자 맹세한 사람.....

 

월하노인이 실수를 하여 아마도 그의 발목에 홍실을 두가닥 내 발목에 청실을 두가닥 엮었을 게다.

 

"하~!"

나오는 한숨 뒤로하고

앞치마

설겆이

빨래감 정리

세탁기 돌고....

이방 저방 가지런히 모두모두 제자리

애들이 크니 정리할 게 많이 없어 좋다.

청소기

"우우웅 " 아무소리 안들림

걸레들고 앉았는데

명치끝이 찌르르 쓰리다.

울고싶다.

왜?

모르지 그냥

대성통곡이란걸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친정 아버지 돌아가셨을때처럼 그렇게

지치도록 울어보고 싶다.

 

헤어져야하나?

나쁜짓도 안했는데?

그래봤자 소위 불륜이지!

아니다

분명 다르다라고 핑계되고 싶다.

우린 그냥 오랜지기 친구인게다.

서로의 가정도 소중히 여기는

'우리마누라 그러니까 진짜 서운하데'

'야!  애기엄마에게 그러지 마 아줌마는 여자 아니냐?'

'남편들이 그러는데 어느 아내가 남편에게 살살거리겠냐?'

'연애할때처럼 해줘봐 아줌마들도 다 섹시하고 그래 누구 몰라서 안하는 줄 알어?'

'남자들이 여자들 통나무로 만드는거야 '

늘 우리의 만남은 이런 것 뿐인데..... 옛날엔  옛날엔 정말 뜨거운 사이였지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