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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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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


BY 들풀향기 2003-09-18

엄마

엄마를 통해 귀중한 생명으로 이세상에 태어나 올해 서른해를 훌쩍 넘겨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적 우리 집은 산밑 작은 스레트 집이였지요

그곳에서 부모님과 두명의 언니 그리고 나와 세명의 남동생인 6남매가 씩씩하게 살았었지요

어느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시골은 서정적이고 낭만과 추억이 함께하는 꿈같은 전원풍경과

이상적인 생활로 그려집니다.

그것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의 생활이지만 행복했다라고.....그려집니다

바로 그랬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아쉽고 부족한게 너무 많았지만 행복했던 기억만이 나의 가슴속깊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 그 가슴 저 밑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파내어 조금씩조금씩

버리려 하니 또 눈물이 주루룩......

나의 어린 시절은 한폭의 풍경화 그 자채였습니다

동화책도 없었고 우산도 턱없이 부족해서 비오는날엔 늘 비 맞는게 당연했고 비가내려도

눈이 날려도 5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남들은 비가 오거나 몹시 추운날엔 버스를 탓지만 나에겐 그런 행운이 일년에 고작 서너번이지만 그래도 몹시 설래고 기뻤습니다

아련히... 기억합니다

건빵이 20원이고 라면땅이 10원 그리고 삼양라면이 35원정도 했습니다

1원짜리 눈깔사탕은 얼마나 컷는지 입에 다 넣을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과자들이 슈퍼에 진열되어 있어 사먹어 보지만 맛은 틀려도 그때의 추억만큼은 아련하게 필름처럼 영상되어 펼쳐집니다

나는 과자를 먹는게 아니고 추억을 먹는거야 하며 중얼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렇치만 그리먼 옛날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엄마가 논, 밭으로 일을 가시면 초등학생인 난 늘 6섯살차이나는 동생을 돌봤습니다

멍석에 콩을 가득 널어놓고 그 위에서 동생과 콩을 가지고 놀다가 동생 콧구멍에 콩알이

들어가 진땀을 뺐습니다

코를 풀며 "흥"하면 튀어나올텐데 그것조차 힘겨운 어린 동생이었나 봅니다

죽을까바 무서워서 엉엉 울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가 도와줘서 콩을 꺼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참깨를 턴다고 들에 나가셨습니다

물론 동생은 내게 맡겨지고 지금 생각하니 두 언니와 다른 남동생 둘은 뭐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실컷 신나게 잘 놀고 시간이 흘러 동생이 잠이들었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축 늘어져 잠을 자더라고요

어린저는 정말 동생이 죽은줄알고 맨발로 어마가 있는곳에 뛰어갔습니다

단숨에 들을 달려 하나의 산등성이를 지나 두개의 산등성이 중턱쯤에서 깨를 털고있는 엄마에게 숨넘어가는 소리로 동생이 죽었다고 했더니 뭔 말이 필요 했을까요 그냥 깨털던 몽둥이를 든채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지요 저는 왕복 달리기를 한 샘입니다

엄마는 동생의 가슴팍에 얼굴을 드리밀고 숨을쉬는지 확인을 하더니 갑자기 절 노려보더군요 그리고 들고있던 몽둥이로 사정없이 절 때리는거예요 억울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그냥 맞고만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맞아죽을뻔 했지요

어른이 된 지금 그곳을 가도 엄청난 먼 거리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