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학기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아지트의 규율과 신앙심으로 철저히 경계태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무조건 ‘예’, ‘아니오’로 대답하고 공부만 하기로 내 자신과 약속했다. 또 나의 신께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드렸다. 덕분에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나에게 쉬는 시간이나 수업 후 회사 버스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도 너무나 소중했기에 자투리 시간까지 공부에 할애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수업 후 강의실에 혼자 남아 공부하고 있으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공부에 빠져있는 나에게 커피 한 잔을 책상위에 올려두며 “열심히 해라”하고는 문을 꼭 닫아주고 나갔다. 야간 대학생이었기에 밤에 혼자 빈 강의실에서, 더구나 한적한 건물에서 여자 혼자 공부하기란 조금은 오싹할 일인데 갑자기 남자가 문을 ‘확’열어젖히고 들어오면 안 놀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난 문 열 땐 모르다가 커피를 책상에 올려놓을 때서야
“엄마야!”하고 소리칠 정도로 공부에 빠져있었다.
그 남학생은 보기에도 나보다는 나이가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예상컨대 내가 스무살. 그는 스물 대여섯 정도? 사실인지 첫 날만 존대해 주고 그 다음 날부턴 알아서 반말로 얘기했던 그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 일하면서 공부하려면 힘들지 않냐? 난 죽겠던데...하물며 네가... 열심히 해라.”나의 알 수 없는 표정에 무안한지 커피만 두고 그냥 얼버무리며 나가 버리곤 한다. 사실 나이가 많아 보여서 그랬는지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 이랬나.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커피나 음료수를 갖다 바치니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 게 그 사람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았다.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세여?”
“와 아직까지 내 이름도 몰랐니? 박덕만이야.”
그는 내가 말을 걸어 주기를 무척이나 기다린 듯 했다. 어찌나 환히 웃던지 동그란 얼굴이 정말 굴러갈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에게 이 것 저 것 캐묻고, 묻지도 않은 자기 얘기도 덧붙였다. 오늘 정말 입학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 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다가서서 친해진 사람.
이름은 김현민. 그도 회사를 다니며 공부한다. 잘 나가는 모 통신 회사에서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했다. 나이는 스물 넷. 나와 네 살 차이. 그리고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인지 더욱 친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정보를 나도 모르게 알아버렸다.
항상 피곤한 나는 쉬는 시간에 공부하지 않으면 잠깐이나마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곤 했다. 그 때마다 조금 친해진(?) 아무튼 나와 대화 몇 마디라도 주고받은 이들은 내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는지 옆에서 한 마디씩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말 한마디에 나의 경계선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는 모두 들으라는 듯이
“예진이 우니? 왜~ 이 오빠에게 얘기해 봐.”
하며 모두들 어려워하는 나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아니 사고를 친 것이다. 순간 주변이 썰렁해지고 순식간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어색한 분위기 몇 초가 지나고 다시 수군수군. 그러나 이미 눈들은 모두 나에게 쏠려 있음을 뒤통수가 따갑도록 느낄 수 있었다. 쉬려고 엎드려있던 나는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너무 난감했다. 인상쓰며 일어나자니 호감가는 그에게 무안을 줄 것 같고, 웃으며 일어나자니 아지트의 양심에 걸리고... 그러나 그 갈등도 잠시뿐. 난 이미 그에게 웃으며
“안 울어요. 피곤해서 좀 자려고요. 안 그러면 수업 시간에 졸거 같아서.”말해버렸다. 잠이 확 달아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몇 년간의 나의 신앙이 여기서 무너지는 구나. 아니야! 아니야!’
또 한편으론
‘그래. 이건 아지트와 내 본연의 모습의 조그마한 타협일 뿐.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아마도 그렇게 합리화시키고 싶은 나의 진심이겠지.
그 일이 있은 후 난 학우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젠 제법 짧게나마 자연스레 대화도 하고, 같이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 나의 별명이 ‘비구니’였다고 서슴없이 말해주어 같이 웃기도 했다.
물론 김현민씨와도 더 가까워졌다. 아예 다른 학우들은 우리를 ‘캠퍼스 커플’로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둘 다 회사를 다녀서인지 등교하는 시간이 비슷했고, 둘만 표준어로 말하고, 늦게 강의실에 오는 탓에 자리도 늘 붙어있고... 그 핑계로 모르는 문제는 항상 그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이젠 곱지 않은 시선이 몇 있는 줄 알면서도 그런 상황을 즐겼다. 핸섬하고 자상한 그에게 관심을 두는 여학생이 나 말고 셋 있었으니 가끔 나타나는 우리과 여학생들. 왠지 나와 그만의 특권을 누리는 거 같아 우쭐해지기도 했다. 학교에선 나의 주가가 나날이 상승하고 대학생활을 즐거이 보낼 수 있음에 너무 행복했다. 물론 학교에서만.
아지트로 돌아오면 갈등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며칠 사이에 나의 신앙심은 많이 무너져 버렸다. 아니 내가 무너뜨렸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고백하고 회개했어야 됨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 했음에 너무 괴로웠다. 그러다가도 학교만 가면 또다시 즐거워지고... 말 그대로 ‘이중생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