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부엌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신작로로 들락거리던 어머니는 다시 빗자루를 들고 뜨락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외할아버지하고 외삼촌 안와?" 모처럼 얼굴이 환해진 어머니를 바라보고 나는 물었다.
"새벽에 출발하셨다니 이쯤이면 오실때가 되었는데 안오신다"
어머니의 발에 걸린 코가 뾰족한 하얀고무신이 여간 가벼워보이는게 아니라 걸음걸이가 종내 춤추듯 하여 나는 마당으로 폴짝 뛰어내려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따라나서며 어머니에게 무게라도 더해줄량으로 팔목에 매달렸다.
어머니는 솜틀집 문틀에 앉아 연탄공장 위쪽의 길위에 눈을 고정시켰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좋아?"
"그럼, 너는 아버지가 안좋으니?
"... 좋은데 그래도 엄마가 더 좋아"
"엄마도 외할아버지가 아버지니까 좋은거야, 뵙고싶고 기다려지고.
우리 지은이 쌀밥 먹으라고 쌀가지고 오신단다. 아. 저기 오신다. 지은아, 저기 외할아버지 오신다. 외삼촌도 오고.."
소의 느리고 지긋한 걸음걸이에 맞춰 외할아버지는 소의 고삐를 잡고 걸어오고 있었는데 마차위에 얹어진 쌀가마니 옆에 검정제복을 입고 앉아있는 외삼촌의 반듯한 모습은 빈 신작로를 가득채웠다.
그때만큼 어머니의 얼굴이 자애롭고 부드럽고 환해 보이는건 내 기억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나는 소달구지를 향해 뛰어가는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치 날아갈수도 있을것 같애.하는 생각을 했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번쩍 안아들고 "많이 컸구나"했고 대학생인 외삼촌은 아무말 없이 내머리를 쓰다듬었다.
솜틀집옆 빵공장을 하는 경옥이네집 골목에 소고삐를 잡아매고 외할아버지는 지게를 내려 쌀을 얹고 외삼촌은 달걀냄새와 마아가린냄새가 달콤하게 번지는 골목쪽을 두번정도 뒤돌아보더니 다시 똑바른 걸음걸이로 외할아버지를 뒤따라 갔는데 어머니는 외삼촌 책가방을 들며 "무겁지?"하고 건네 받고는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동네 아이들이 외할아버지 소가 매여있는 경옥이네 골목으로 몰려들었다.
어머니는 종일토록 끓인 고기국을 밥상에 올려 들고 나왔다.
"아버지 , 많이 드세요."
그리고 외삼촌을 향해 "너도 많이 먹어, 공부하느라 힘들지?"했는데
"힘들긴 뭐, 누나도 먹어요"하고 외삼촌은 금새 한그릇을 비워냈다.
몇번인가 어머니는 외삼촌 국그릇에 고기국물을 채웠고 나는 유심히 즐거워보이는 어머니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날 밤 외할아버지는 빈마차를 끌고 30여리가 되는 길을 돌아가셨는데 외삼촌은 달구지위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여전히 반듯한 모습으로 앉았는데 어둠이 내려와 은행나무집을 지날때쯤 외삼촌의 모습은 가려졌고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으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아까처럼 연탄공장지나갈때쯤까지는 발끝도 보이지않고 소마차도 보이지않고 희끗희끗하더니 나비처럼 날아가는듯하게 사라졌다.
그것이 내 외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마지막 날이였다.
이틀후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어머니는 그 하얗고 가벼웠던 코가 뾰족한 고무신을 신고 달려나갔는데 웬지 금새 넘어질듯 걱정스러워 나는 솜틀집에 앉아 흘렸던 눈물이 마를때까지 울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 태어난지 여섯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