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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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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와의 동거


BY 과일나라 2003-07-25

얼마만일까,,,,

선아와 연희는 처음으로 저녁 밥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동안 아무런 말이 없어도 연희는 있는 듯 없는듯, 선아의 옷가지며, 밥이며, 모든 살림을 소리 없이 해주었고, 선아는 연희가 마음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은 틀림없지만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서운함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반찬을 보니...연희의 꼼꼼함이 그대로 묻어나 보였다.

 

-많이 먹어,,,홀 몸도 아닌데....

-네..언니..

 

선아는 지금까지 한번도 연희에게 말을 걸어보질 않았었다.

진작에 이렇게 말이라도 하고 지냈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연희의 성도 나이도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물론 알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요즘 건우는 어떻게 지내니?

-오빠는 요즘 일다녀요.

-학교는?

-휴학했어요.

-방 구할 돈은 모았어? 언제 나갈생각이야?

-.......

-내가 당분간이라구 했지....너 여기서 살라고 한적은 없어.

 

선아는 연희가 아무런 말이 없자 밥을 뜨다 말고 연희를 쳐다봤다.

 

-언니...미안해요,

 

연희의 눈에 금새 눈물이 고였다.

 

-울지마,,,그렇다고 내가 당장 나가라고 한건 아니잖아.

나쁜자식....지 마누라가  배까지 불러서 남의 집에 있는데 한번도 안와봐?

-오빠,,,,지금 지방에 올라가 잇어요,,,다리 공사 하는데....

 

선아는 건우가 지방에서 다리 공사 인부로 일하고 잇다는 소리에 마음이 져려왔다.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선아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서 입에다 넣고 말했다.

밥을 다 먹고, 밥상을 들고 나가는 연희의 배가 조금 불러 있는것이 보였다.

 

 

-몇개월째야? 배가 제법 부른거 같은데...

-이제 5개월 됫어요.

-병원은 가봣어?

-아니...아직요...

 

그럴만도 했다, 무슨 돈이 있어 병원에 가봣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선아는 연희가 안쓰러워 보였다.

 

-내일 5시에 집앞으로 나와, 아무리 그렇지만 병원은 한번 가봤어야잖아.

-네...

-바보같은 자식....

 

선아는 건우가 너무 미웠다. 아니...남자들이 미웠다.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책임지지 못하는게  화가 났다.

 

-언니....

 

아무말없이 TV를 보고 잇던 연희가 입을 열었다.

 

-말해...

 

-언니....건우 오빠.....미워하지 마세요....

 

선아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 연희가 우스워 보였다.

 

-왜? 넌 내가 건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니?

-오빠가 사실 사랑하는 사람은 언니에요....

-......

-오빠가 저번에 저보구 헤어지자구 그랬어요....

전 오빠가 언니 만나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오빠는 제가 모르는 줄 알았나바요.

-걱정하지마,,이젠 아니니까,,,,

-아니요,,,전 아직도 오빠 마음에 언니가 있다는걸 알아요.

오빠는 어쩔수 없이 저를 선택한거에요.

-이제 와서 그런말을 왜해?

 

연희는 왼손 손목에 옷깃을 걷어 올리면서 손목을 선아에게 보여줬다.

연희의 가늘고 흰 손목 위엔 빨갛게 너무나 선명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

 

-너?....무서운 애구나,,,,

 

선아는 그 상처를 보자 몸서리가 쳐졌다.

 

-제가 오빠한테 못할짓을 했어요. 전 오빠가 없으면 이세상에 살 이유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후회해요,,,언니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는걸 알았으면,,,,오빠를 놔줬어야 했는데....

 

연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듯이 연희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이 더 커져 갔다.

선아는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다만,,,어쩌면 이리도 사랑에 목숨까지 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연희는 울먹이더니....마음의 편안함을 찾은듯 두손으로 손수건을 돌돌 말았다, 폈다 를 반복했다.

선아는 무슨 말이든 해야겠기에....생각을 짜내고 있엇다.

 

-우린 단지 친구였어,,솔직히 나도 건우를 좋아하지만,,,

너처럼 그렇게 사랑을 지켜내진 못했을꺼야, 그리고 건우도 널 많이 생각하더라,,,,

뱃속에 아이는 너희 둘의 아이잖아, 용기내서 끝까지 잘 지켜 나가길 바래... 그리구,,,,

-언니...언니 마음 잘 알아요,,,하지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요. 오빠가 정말 사랑한 사람은 언니 였다는거,,,,그래서 언니가 너무 미웠는데.... 전 오빠를 잊을 수가 없어요,,,너무 사랑해서,,,,

-그래그래,,,그만하자,,,,이제 서로 알았으니까 됬잖아,,,그만 울어,,,

 

선아는 연희의 등을 쓸어주면서 다독엿다.

선아는 저렇게 작은 체구에서 어쩜 저런 강한 마음이 생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건우의 마음에 있는 사람은 정작 선아 자신이었다는 소리를 연희에게서 듣자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슴을 훓고 지나갔다.

 

'생각하면 뭐하구 아쉬워 하면 뭐해,,,이미 지나간 일인것을.....'

 

저 많은 생각들을 연희는 얼마나 가슴에 꼭꼭 눌러 담고 살았을까,,,,자기가 연희 입장이엿다면 당장 끝내도 시원찮을 어줍짢은 사랑이었겠지만,,,연희에겐 자신의 목숨을 내 놓을 만큼

절실했다면,,,,건우는 연희와 함께 해도 괜찮을거란 생각을 했다.

 

집앞에 연희가 나와 있었다. 처음 선아집에 왔을때 입었던 가디건이...한겨울 추위를 막아주기엔 너무 얇아 보였다.

선아는 먼저 연희 윗도리부터 하나 사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서타,,,,

-네...

 

연희는 어제 울면서 속에 있는 말들을 털어버린 탓인지 오늘은 한결 밝은 얼굴이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두 여자의 보이지 않는 벽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선아는 연희에게 연두색 가디건을 사줬다, 털실로 짜져서 따뜻하고 넉넉한 옷이었다.

그리고 흰색 목도리도 사서 목에 둘러줬다.

 

-나 너 처음 봤을때 흰원피스 입은거 기억하거든....

그때 철에 안 맞는 원피스를 입고 나와서 좀 우습긴 했지만,,,,넌 흰색이 잘 어울리더라,

그래서 목도리는 흰색으로 삿어,,,맘에 드니?

-네...언니...너무 고마워요.

 

환하게 웃어보이는 연희의 얼굴을 보니 선아도 마음이 푸근해 졌다.

그리고 두 여자는 건강한 아이의 초음파 사진과 연희가 먹고 싶어 했던 사과를 한아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 가득히 이 두사람을 축복해주듯 겨울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