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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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는 조심스레 석호를 돌아다 봤다. 그는 아직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는 양 그저 그렇게 담배만 연신 피우고 있었다.
“........수희에게 얘기해야겠지....”
석호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연희는 일어나 조용히 옷을 입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는 어느새 땀들이 살 위로 드러나 있다.
“내가...얘기할까?”
연희의 부드러운 음성에는 작은 두려움이 묻어나고 있었고 그것을 모를 석호는 아니었다.
석호는 피우던 담배를 컵에 부벼 껐다. 물기가 있었던 컵에는 금세 치지직.....소리가 났다.
“아냐. 됐어. 내가 얘기할게. 네가 얘기하면 너희 자매 사이만 나빠질 거야.”
“.........”
지금과 같은 상황을 수희에게 말해서 상황이 악화 될 것이란 것은 석호가 얘기하든 연희가 얘기하든 뻔한 사실이었다.
석호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일어섰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비친 그의 얼굴에도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 있다.
짙은 눈썹에 아름다운 눈을 가진 석호.....그는 연희의 첫사랑이었다. 여대를 다니던 동생 수희가 처음으로 데려왔던 잘 생기고 호감이 가던 연하의 남자.......그가 석호였다.
석호 역시 연희를 봤을 때 수희에게서 느끼던 감정과는 다른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두 사람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수희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
거리는 한산했다.
일부러 사람 눈이 드문 곳을 골라 선택한 여관이었지만 비교적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기에 연희는 그런 곳에서 석호와 첫날밤을 보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희를 괴롭히는 것은 동생 수희에 대한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석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연희를 처음으로 안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수희에 대한 미안함은 차후의 일일뿐이었다.
석호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 옆에 앉은 연희를 돌아보자 하얀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있다. 어린아이처럼 하얗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아름다운 눈도 지금은 반짝이지 않는다. 그 아래 자그마하지만 날씬하게 뻗은 콧날과 지금은 메마른 입술이 반쯤 벌려져 있다.
석호는 갑자기 차를 나무가 우거진 도로 옆으로 몰아 세웠다.
끼기기익............
석호의 돌연한 행동에 연희는 생각에 잠겨 있다 깜짝 놀랐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동그란 눈은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더 커져서 석호를 바라본다. 꽉 쥔 주먹은 꽤나 놀란 듯 파랗게 심줄이 돋아 날려는 듯하다. 그런 연희를 바라보자 석호는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그녀를 껴안아 힘껏 입술을 부볐다.
조금 메말랐던 그녀의 입술이 촉촉해져 온다.
“미안해....연희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너무 사랑하는데........사랑하는데.....”
석호는 연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듯 속삭였다.
연희는 석호의 깊은 사랑에 갑작스레 눈물이 솟구쳤다. 석호대신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연희였다. 그런 그녀였지만 목이 너무나도 메어와 석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흐윽...........응.........응”
눈부신 여름해가 중천에 솟아 오를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