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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1


BY 민아 2003-08-07

유난히도 덥다...

남포동 서점에서 땀을 식혔다. 좀 일찍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서점 창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혹시 남편에게서 문자라도 오지 않았을까..하는 기대에 ...

시간만..찍혀있는 나의 폰...

약속 시간은 한시간이나 남아있다. '일찍 가서 앉아 있을까?'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으려니 서점 직원이 자꾸 힐끗힐끗 쳐다본다.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보았다. 혹시 땀에 화장에 얼룩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맘에..

손이 떨린다. 거울이 흔들린다.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그냥..집으로 갈까? 괜히 만난느거 아닌가... '

'아니야...남편도..날 힘들게 했는데...뭐..난 그동안 나혼자만을 시간을 가져본적이 없잖아.

괜찮아..정말...만난다고 죄짓는것도 아닌데...편하게 생각해..편하게....'

마음이 자꾸 흔들린다.

애잇...일어나자... 일찍 가서 기다리지...뭐...

 

서점을 나서자 마자..바로 택시를 탔다.

지허철을 타기 싫었다. 오늘만은 나도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아저씨.. 해운대 **호텔이요..."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차는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시원시원하다...

차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 밖은 더울지라도 지금 난 ..아주 좋다.

'그래...오늘만은 남편 생각하지 말자. 아이들도 잊자... 편하게 즐기자...'

자꾸 주문을 왼다.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더 불안해 해지지만... 그래도 난 지금 주문을 외워야 한다.

 

택시가 호텔 로비에 세워졌다.

요금...12000원...

'너무 비싸다...'괜히 타고 온것 같다. 시간도 20분이나 남았는데...

일찍 도착것도 후회된다.

로비문을 밀고 들어갔다.

일요일오후라서 그런지 결혼식 손님들로 로비는 붐벼있다.

한복입은 사람들도 많고,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로비를 가득 메운것 같다.

그 로비를 지나...

로비에 있는 커피숍이 보였따.

바다가 펼쳐져 있는 넓은 창이 나의 시야를 환하게 했다.

한쪽 테이블엔 젊은 남녀가 바다를 바라 보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년의 모임들인지도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고,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가 바다를 보고 신문을 보고 있다.

혹시...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가고 있었다.

뒷모습이 과거의 그사람과는 좀 다른듯 했다.

14년전의 그는 빼빼 마르고  머리도 길었는데...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앉아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은 체격도 좀 있고,머리도 짧다.

혹시..하면서 옆으로 갔다.

"어! 맞네...일찍 와 있었네... 나도 일찍 왔는데..."

앉지도 못하고 서서..난 너무나 부자연 스러웠다.

어딜 앉아야 할지를 몰랐다.

원탁의 테이블에서 바다를 보며 앉으려면 그 옆에 앉아야하고 마주 보고 앉으려면

바다를 등지고 앉아야하고...

망설이고 있는 순간...

"바다가 넘 시원해보인다. 여기 앉아라... "

의자를 밀어준다. 나도 모르게...그 옆에 앉았다.

가슴이 콱막혔다. 반가왔다. 보고 싶었던 그 얼굴...

정말..너무나 보고 싶었던 그 얼굴이다.

"하나도 안 변했다. 오히려 더 분위기 있어졌구나..."

그가 나한테 한 마디 한다.

"보고 싶었다...이렇게 멀리 살고 있느줄 정말 몰랐다..."

난 그냥 웃고만 있었다.

'너도 너무나 멋있어졌어... 이렇게 날 만나러 와줘서 정말 고마와..'

말하고 싶었지만..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키위주스를 시켰다.

그는 벌써 날 기다리면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너 얼굴 보니까..아무 말도 못하겠다.."

"정말..마니 보고 싶었다..."

진심같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였따.

"나도 마니 보고싶었어... 이렇게 너랑 바다를 볼줄이야...정말..좋다."

난..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애꿎은 바다만 보면서 아주 힘들게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아주 작게...

 

내가 시킨 주스가 나왔다.

한모금 빨고 나서... 그는 일상적인 질문들을 했다.

애들은 몇이고, 몇살이고,..

결혼한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나역시 똑같은 대화만 주고 받았다.

 

한동안 말이 없을때도 있었고...

난 계속 바다만 보았고,

그는 내 얼굴만 보았다.

불안했다.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그러나..그가 쳐다보는 눈길이 싫지않았다.

 

"드라이브 할까? " 그가 일어섰다.

"그래...그러자..."

그 커피숍을 나와서 그가 몰고온 차에 탔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울남편...

우리차에 그 여자도 태우며 다녔겠지... 난 그것도 모르고...

일요일 마다 차 닦아주고,

차향제 갈아주고...

그런걸 생각하면 차를 갈아치우고 싶은 심정...참을수 없는 모욕감이 드는데...

 

난 지금 그의 차에 앉아있다.

그의 부인이 앉아야 할 자리에 내가 버젓이 앉아있다.

머리가 지근지근해진다.

하지만 그에게 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튼다.

"오늘 널 만나면 선물하려고 하나 만들었다. " 하면서 작은 씨디를 주었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들이야...이건 이세상에 너하고 나. 만 가지고 있는거야...잘 간직해.."

14여년전으로 돌아간것 같다.

서로 데이트할때 테이프에 음악 녹음해 주고..같이 워크맨으로 듣고...

종로5가에서 대학로 거리를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걸으며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고마와.."

가방에 넣었다.

우린 달맞이 고개를 지나갔다.

부산에 살면서도 달맞이 고개는 남편이랑은 두번정도 왔었던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 오후 인데도 유달리 차가 없다.

지금 이순간 만은 즐기고 싶었다.

남편의 일도, 아이들의 걱정도 다 잊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