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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代表


BY 금풍천 2003-07-11

2. 國家代表

 

에어로빅하는 여자들 대게는 40대후반에서 50대가 많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것 저것 다 해보았지만 결국 운동 말고는 건강을 지킬만한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장에 나오게 되고 그것이 습관으로 쌓이면 조금씩 조금씩 건강이 좋아지는게 감지되는게 운동장의 원리다.

그래서 저들은 오늘도 몸을 흔들어 대는게 아니던가. 현란한 몸놀림을 바라보며 뛰거나 달리는 사람들은 때론 묘한 감정을 느낀다. 풍성한 살덩이가 요동을 하고 음악이 고조되면 대게의 남자들은 넋을 가끔씩 잃기(?)도 하는데 심씨도 예외는 아니다.
 
"안녕하세요?"

심씨를 알아보는 사람중에 가장 오래된 아줌마다. 별명이 슈퍼 땅콩인데, 3백6십5일 하루도 결석하는 일이 없다. 철물점을 하는 남편도 가끔 나오는데 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예~ 혼자 오셨나요?"

남편과 같이 나오는 여자 보다는 혼자 나오는 여자에게 친근감이 가는건 인지상정이겠지.
심씨는 슈퍼땅콩과 같이 보조를 맞추면 속도가 알맞다. 그녀와 가끔 발을 맞춰 달리면 아무래도 발길이 가볍고 힘이 난다. 남녀라는 것이 아무래도 힘을 내는 묘함이 있지 않던가.

한바퀴, 두바퀴 돌다보면 손님(?)이 늘어 난다. 한복하는 아줌마, 개인택시 운전사, 그리고 남편을 서산에 보내고 혼자지낸다는 자칭 주중과부, 정년퇴직하고 세월아 네월아 건강만 하여다오 한만희씨 부부....
발을 맞춰서 달리면서 도란  도란 얘기를 한다. 그렇지. 조깅의 속도는 뛰면서 서로의 말이 들릴정도가 좋다고 하지 않던가.

예닐곱이 무리가 지어지면 좀 신이 난다지. 사람이 무리 속에 속했다는 확인이 될 때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타난단다. 그리고 무리 속에서 자신을 인정 받고 싶어 튀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지 않던가 

"저 남자 누구예요?"
"누구..?"
"저기 며칠전부터 뛰는 젊은 남자.?"
"아, 저기 노란 팬티..."
"그래요 무지하게 달리네.."

여자들 입에 오른 남자는 누구말에 의하면 왕년의 국가대표 선수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180㎝정도 됨직한 정말 잘빠진 키와 균형잡힌 몸매가 호감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무슨 대표 선수래요?"
"글쎄....배구선수라던가..농구선수라던가... "
"배구선수가 왜 달리기를 해요?"
"모르지. 달리기가 모든 운동의 기본이니까.."

서로의 의견을 말하지만 그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가 이 운동장에 등장한 이후로 대다수 여자들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심씨도 그의 행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냥 내 운동만 하면 돼지만 여자들의 관심이 갑자기 그쪽으로 쏠리니 괜한 소외감이랄까.........더구다나 아내가 아프면서부터 한번도 만족할만한 남자 대접을 못받는 관계로 여자에 대한 은연중의 관심이 늘 내면에서 동요하는 심씨이다.

그 국가대표가 함께 달리는 무리를 획 제치고 여유있게 내 달린다. 치과의사가 몇조금 따라 간다고 달려 보지만 몇 발자국 못가서 따라 붙지 못한다.

"능력대로 살면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은 상한다. 국가대표를 제치고 신나게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한문희씨 부부가 차츰 무리에서 쳐진다. 워낙 체중이 110키로가 넘는데다 부인은 신장이 좋지 않아 약을 먹는 관계로 계속 무리와 함께 달리지는 못한다. 다만 개인택시는 한만희씨 못지 않은 체중인데도 악을 쓰면 따라 온다. 아직 좀은 젊으니까.......

"어, 저기 미용실 오네.."
"한동안 안보이더니.."

근희 미용실 여자가 늦잠을 잤는지 수위실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뵌다.

"돈 잘번다데..미용실.."
"그래요, 경기가 없으면 여자는 화장도 더하고 머리도 더 예쁘게 한다는데.."
"그럴테지. 우중충하게 하고 있으면 장사될라고.."
"여자가 화장을 짙게하면 경기가 침체된 것이라잖아요"

미용실 여자가 금새 대열에 합류한다. 
미용실 여자를 선망하는 남자는 개인 택시이다. 워낙 운동장의 여자라는 여자는 다 말걸고 찝적이지만 대꾸해 주고 말벗이 되주는 여자는 너그러운 미용실뿐이기에 반겨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심씨도 언제가부터 미용실의 아담한 몸매를 감상하게 되었다. 워낙 자기 부인이 덩치가 커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덩치가 작고 안으면 품안에 쏙 들어올 것같은 여자가 호감이 가는 심씨다. 

"야, 저 남자 무자게 뛰네!"

미용실의 눈은 무리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다. 국가대표라는 그 새로 등장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뭔가 자세히 그 남자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운동장의 화두는 국가대표 그 남자에게 있을 것 같았다.

심씨는 달림을 멈췄다. 기분 나빠.... 트랙 밖으로 나와 뒷산이나 돌아서 가야겠다는게 그의 심사다.

"빌어먹을..."

그는 버려진 프라스틱 물병 하나를 냅싸 걷어찻다 나이답지 않게

오나가나 섹시한 여자 옹녀, 몸매 잘빠진 여자. 허리 잘룩한 여자가 대접을 받고
균형잡흰 건장한 남자. 힘께나 쓸 것같은 젊고 박력있는 남자, 금방 잡은 물고기처럼 펄덕이는 남자, 활화산처럼 힘이 솟는 남자 변강쇠요 거기에다 메너 좋고 돈잘쓰면 금상첨화라고 하던가....

이 시대 어디를 가도 이 기준과 가치는 항상 진리처럼 행세하기에 나이를 먹는게 서럽고 힘 없는게 한탄스러워 늙음을 퇴치하고 지연시켜 보려고 저렇게 운동장에서 히프를 돌리고 달리고 뛰고 소리치지 않던가.

찹작한 마음으로 심씨는 캠퍼스 뒷산의 평평한 등산로를 오르고 있었다.
아카시아 잎새와 열매도 열지 못하는 밤나무와 늙어버린 조선솔이 길옆에 서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평행봉·철봉·윗몸일으키기대·벤치가 그를 맞는다.

오늘은 날이 좋다고 했지. 심씨는 숲속의 나무공간으로 보이는 하늘을 본다. 언제나 똑같은 하늘인데 은 왠지 더없이 외로움이 몰려온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속에 누워서 기다릴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래 어떻게든 아내를 끌어 내야 한다.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의 발길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운동장을 보니 국가대표가 운동장 귀퉁이에 서 있고 무얼 들으려는지 여자들이 둘러서서 그를 주시하고 있다. 심씨는 괜히 가래를 끌어 올려 퇘하고 침을 뱉았다. 자기것을 빼앗은 것도 달란적도 없는데....참 사람맘은 알 수가 없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