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준호 엄마 뒤를 따라갔다.
" 현석엄마 빨리 와 젊은 사람이 겁이 왜 그리 많어."
성격이 급한 준호 엄마는 어느새 댄스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 처음이라서요."
연희는 다시금 심호흡을 한 후 2층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교실 안에는 몇사람만 짝을 맞추어 춤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희의 생각대로 준호엄마 나이의 아줌마들과 그보다 더 들어보이는 아저씨들 뿐이었다.
연희와 준호엄마가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두여자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연희는 더욱 주눅이 들었다.
"무슨일로 오셨나요."
머리 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생긴 사람이 두 사람에게 다가 왔다.
"예 저희도 춤을 배우고 싶어서요. 아니 댄스를 배우고 싶어서요."
"아 저는 아니 아니예요."
연희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준호엄마는 연희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현석엄마 공짜로 배울 수 있는데 왜 싫다고해 아무소리 말고 나랑 배우러 오자."
준호엄마는 광고신문에 3개월간 무료로 가르쳐준다는 문구를 보고 온것이었다.
"아니요 저는 오늘 그냥 따라 온거예요 전 이런거 배우기 싫어요."
'이런거'라는 연희의 말에 주의 사람들이 연희에게 핀잔의 눈초리가 쏘다졌다.
"아 그러세요 근데 사교춤을 오해하시는 분이 많으신데 사교춤도 이제는 스포츠입니다. 일부러 사회생활을 하려고 사교춤을 배우러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너무 나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한번 배워보시죠."
말끔하게 생긴 선생이 연희를 설득하려했다.
"나쁘게 보는게 아니라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도 안보이고 저는 오늘 그냥 구경이나 하다 가겠습니다. 준호 엄마 얼른 등록하세요."
"지금은 이른시간이라 그런데 조금 있으면 젊은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럼 할 수 없죠 이쪽 분만 등록하시고요 며칠 구경오셔서 맘에 드시면 등록하십시요."
"현석엄마 같이 하자~~"
연희는 눈을 찡그리며 선생말대로 며칠 구경하다가 하겠다며 사양한다.
준호 엄마가 등록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또다시 문이 열리며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수강생들인것 같았다. 연희는 아무생각없이 고개를 돌려서 그들을 보았다. 모두 연희 나이의 아줌마들 사이로 몇명의 젊은 남자들도 끼어있었다. 연희는 왠지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얼른 돌렸다.
"어머 수강생이 늘었나 보네 무료로 하니까 확실히 수강생이 많아지네요."
늘씬하고 왠지 얄밉게 생긴 여자가 연희와 준호엄마를 보고 한마디하였다.
"예 민숙씨 이분은 구경만 오신분입니다."
선생은 연희를 가리키며 비웃듯이 말을 하였다.
" 왜요 배우면 재미있는데..... 그리고 생활에 활력이 생겨요."
민숙은 나서기 좋아하는 여자 같았다. 연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준호 엄마는 말끔하게 생긴 선생에게 계속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자자 이제 거의 오신것 같으니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새로오신 수강생입니다. 오영숙씨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환영해 주셔서 잘 따라 하실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하세요"
" 처음뵙겠습니다. 선우 아파트에 사는 준호 엄마 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희는 씩씩하게 소개하는 준호엄마를 보며 자기소개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다 자기 자신을 책망한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연희는 생각을 쫓으려 고개를 돌리다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도 연희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황급히 돌렸다.
'젊은 남자가 회사는 안가고 이런거나 배우러 다니냐 정말 한심한 사람이네."
연희도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준호 엄마는 어느새 파트너와 함께 강사가 시키는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시고요 스텝이 중요합니다. 스텝을 따라 하세요."
준호 엄마의 파트너는 아까 연희와 마주쳤던 그 젊은 남자였다. 준호엄마는 파트너가 맘에 들었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준호 엄마를 쳐다보다 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남자 연희를 뚤어지게 쳐다보는게 아닌가 연희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황급히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고개를 돌렸다 다시쳐다보니 다행히 남자와 준호엄마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연희는 웃으며 준호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예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안되시는 분들은 내일 다시할테니까 집에서 가셔서 연습하세요."
모두 박수를 치고 수업을 마쳤다.
준호 엄마가 그 남자의 손을 끌어 당기며 연희에게로 데리고 왔다.
"현석 엄마 내 파트너 석현씨야 잘생겼지 연희 엄마랑 나이가 비슷한것 같은데 아무튼 난 운이 좋은가봐 이런 미남이 파트너가 되다니."
남자는 머쩍은 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석현씨 여기는 나랑 같이온 현석엄마예요. 며칠 구경하다가 등록하겠다네 석현씨가 좀 다니라고 얘기 좀 해줘요."
연희는 남자에게 애교를 떠는 준호엄마가 왠지 혐오스러워 몸이 떨렸다.
"오영숙씨"
강사가 부르는 바람에 준호엄마는 강사에게로 가버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저는 한석현이라고 합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제가 춤에는 문외한이라서 큰 맘먹고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한심해 보이셨죠."
연희는 눈이 동그래졌다. 묻지도 않았는데 별얘기를 다하는 남자가 혹시 그 말로만 듣던 제비 족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 근데 왜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하시죠."
연희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그 남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묻고싶은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냥 저도 모르게 저를 한심하게 보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해명을 하고싶어서요. 이상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꺼까지요."
"저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을 물어봐도 되나요."
"정말 실례인것 같은데요."
연희는 더 이상 이남자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준호 엄마 저 집에 가봐야 되는데요.."
"알았어 얘기 다 끝났어. 조금만"
연희는 멋쩍게 서있는 석현을 혼자 두고 출입구로 향했다.
석현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석현씨 내일 봐요 모두들 내일 뵙겠습니다."
준호엄마는 무엇이 그리 신이 났는지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고 연희에게 다가왔다.
준호엄마는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석현의 얘기를했다.
" 그 사람 있잖아 아까 그 석현씨 얼마나 자상한지 몰라 내가 발을 몇번이나 발밨는데도 인상한번 안쓰고 괜찮다고 하는거야 생긴것도 그만하면 잘생겼잖아 그리고 이벤트 사업을 한다는데 그래서 춤을 배우러 다니는지 아무튼 괜찮은 사람같더라."
계속되는 준호엄마의 말에 짜증이 났다.
"저는 여기서 볼일이 있어서요 볼일 보고 갈께요."
"무슨 볼일 같이 가도 되는데 같이 점심이나 먹자."
"아니요 누구를 만나기로 해서요 점심은 다음에 같이 먹어요."
연희는 따라 오려는 준호엄마를 뒤로 하고 신호등을 건너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석엄마 내일도 꼭 같이 가줘야돼."
큰 소리로 외치는 준호엄마의 소리를 외면하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연희는 할일이 없었다. 연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점을 들어갔다. 서점안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연희는 자기가 좋아하는 에세이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책한권을 들고 연희는 작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연희는 조용히 책읽는게 너무나 행복했다. 서점에 나와 이렇게 책을 고르는 것도 참 오랜만인것 같았다. 연희가 책속에 빠져있을때 누군가 다가와 얼굴을 숙여 책제목을 유심히 보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연희는 감짝 놀라 책에서 눈을 뗐다.
"일행은 어디 두시고 혼자 독서삼매경에 빠지셨어요. 오늘 저는 행운이네요 두번씩이나 그 쪽을 보니말입니다."
석현은 활짝웃으며 놀라있는 연희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