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그러나 마음의 아픔은..
그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숨을 죽이고만 있다.
재란은 따스한 커피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가을 하늘은 왜 저다지도 맑은지...
왜 저리도 높고 파아란지...
조금 있음...물드는 낙엽도 볼 수 있겠지...
토요일 오후...
그러나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재란은 우아하게 자리하고 앉아 하늘을 벗삼고 있었다.
간혹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이 그녀를 알아 보고는 인사를 보냈고 답례로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많았으나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그녀의 긴 휴가를 묵인해 주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긴 시간일수도, 짧은 시간일수도 있었다.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재란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렇지 않으면 긴긴 그리움에 빠져들테니깐...
돌아갈 시간이 된것이다.
정리를 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번 돈으로 작은 중고차를 하나 골랐다.
차문을 닫자 전화가 울렸다.
은숙이었다. 하루에 두세번은 하는 은숙이다.
-야, 이선생, 뭐하냐?-
[뭐하긴, 집에 가는 길이지. 넌?]
-너무 심심하고 따분해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다 우얄래?-
재란은 웃었다.
은숙은 울릉도에 있다.
재란은 아무도 모르게, 은숙에게 조차 한 마디 말도 않고 나와 버린 것이다.
그 일로 은숙은 욕을 퍼지게 하고는 한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진수도 군대 가고...하루 하루가 이리 긴지 몰랐다카이. 겨울 지나믄 나갈낀데 그때까지 우예 견딜꼬 싶다-
[곧 겨울인데 뭐]
-가시나! 내 나가믄 니부터 족칠테이 각오하고 있으라마!-
전화할때마다 하는 소리다.
-야, 니 다른 일은 없나?-
[다른 일? 무슨 다른 일?]
-아이, 뭐...혹시나...?...에이, 몰라! 야, 하여튼 다른, 무슨 일 생기믄 나한테 즉시로 연락해야 된데이? 알았제? 손님와서 끊어야 되겠다-
[...싱겁긴...]
학교와 그녀의 집은 30분 거리에 있었다.
3층 건물의 2층, 오른쪽 집이 그녀가 세 들어 사는 곳이다.
건물 주인은 그녀 작은 아버지로 1층에 살고 계신다.
아버지의 사주로 아침 저녁으로 그녀를 감시(?)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1층 한 켠에는 숙모가 경영하시는 전통 찻집이 있다.
그녀가 들어가려는 순간 작은 아버지가 나왔다.
[이제 오냐? 편지 왔다]
진수한테서 온 편지였다.
[...올라 가봐라]
재란은 쫓아내듯 자신을 올려 보내는, 평소와는 다른 작은 아버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뚱 하면서도 계단을 올랐다.
편지를 뜯었다.
- 잘 지내고 있냐?
마음 같아선 친구고 뭐고 평생 안 볼려고 그랬다. 니도 안보고 삼촌도 안 보고...
솔직히 삼촌이 널 두고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고 생각하자 왜그렇게 화가 나던지...
아마, 삼촌이 널 사랑한다고 했었어도 그 당시 난 화를 냈을거다. 우습제?
근데 이제는 아니다.
훈련 받고 부대 배치를 받은 후 삼촌을 만났어-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전히 그의 얘기라면 가슴이 먼저 반응을 했다.
재란은 계단에 앉았다.
-삼촌이 날 찾아 왔더라. 그리고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삼촌은 소라씨를 사랑하지도 사랑한적도 없다고 하더라. 아마 니한테 젤 중요한 소식이 그게 아닌가 싶다. 아이다. 젤 중요한 건...삼촌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름아닌...너라는 거다.
농담하지 말라고 삼촌 멱살을 잡았는데...아니랜다. 진심이랜다.
나머진 삼촌한테 들어라. 어쩌면 이미 들었는지도 모르고...조만간 정리가 끝나는대로 삼촌이 너한테 간다고 했으니깐 말이다. 만났냐?
재란아.
내가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니가 나를 걱정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렇다면 그런 마음일랑은 깡그리 버리라고...그 얘길 할려고...
삼촌이 널 사랑한다고 했을때 나 진짜 기뻐더라.
이상하게 늘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한 기분이었는데 그 순간 속이 다 후련한 기분이랄까?
진심이다.
다른 놈한테 너 주느니 삼촌이라면,
삼촌이라면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잘해봐라. 진심으로 축복해 준다.
그리고 빨리 날 잡아서 내 휴가 좀 나가게 해주라, 알았제?
한가지 더!
그렇다고 답장 게을리 했다간 숙모고 뭐고 국물도 없다는 것, 명심하고.
하하하하하하....!!!!
야, 이 재란! 어쨌던 잘해봐라-
편지는 그게 다였다.
재란은 충격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멍한 마음으로 편지를 손에 든 채 문을 열고 들어섰다.
현관에 낯선 남자의 구두가 있었다.
설레는 예감으로 방안을 둘러 보았다.
책상위에 걸터 앉아 있는 남자...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남자...
꿈이련가...멍한 상태에서 재란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남자가 가만히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내밀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지만 남자는 그 자리에 있었다.
재란은 가방을 놓고 편지를 떨어뜨리고
천천히...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그가 그녀를 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미안해, 꼬맹이...이제서야 왔어...]
채 영의 다정한 말에 재란은 그제야 그를 두 팔로 꼭 안았다.
-끝-
****************이렇게 끝을 내네요.
할수없이 끝내게 되어 부끄럽네요. 죄송합니다~~~
글이란 게(좋은 글도 아니면서) 처음 시작과는 달리 늘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쨌던 끈기있게, 애착을 가지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중에...나중에는 이번보다 더 나은 글을 안고 돌아오겟습니다.
건강하시고 즐겁게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