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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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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BY 今風泉(隱秘) 2003-07-08

<털보농장 입구>

판대기에 그렇게 써 있었다. 이런 산골에서 농장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아무래도 주인은 털복숭이이고 엄청 마음이 좋은 아저씨겠지.
그녀와 난 계곡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 간다.

"다 왔어. 힘들지?"
"아뇨. 좋아요. 너무 좋아요"
"뭐가 그리 좋아..?"
"그냥요..아주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네.."
"뭐, 살아..누구하고...?"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녀가 눈을 휘둥그래 뜨는 시늉을 한다.
그렇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서 그녀와 둘이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만 그건 어림없는 꿈일뿐인걸...

점점 수목이 울창해진다. 나뭇잎으로 가리워진 숲이 어둠침침할 정도다. 신선하고 고운 바람이 풀섶에서 나오고 전나무, 소나무, 낙엽송, 떡갈나무, 오리나무, 아카시아, 얼키설키 조화를 이루고 싸리나무에 진분홍 꽃이 초롱초롱 달려 있었다.

"자, 다왔어. 저기 집하나 보이지?"
"예..빈집 같네요"

그녀는 그 집앞에 섰다.
여기저기 추억의 흔적들을 찾는 모양이다. 그녀의 눈망울이 슬퍼지기 시작하는걸 느낄수 있었다.
허물어진 돌담으락, 페허된 빈집의 문짝들.. 금새 살쾡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산함..
이집은 누구의 집이란 말인가....

"이리와"

그녀가 집 뒤로 돌아 걸어 올라간다. 그곳에는 작은 무덤하나가 있었다.
정말 구미호에 홀린 것 같기도 했지만 그녀가 구미호라도 난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다음을 주시했다.

조용히 그녀가 그 묘앞에 앉았다. 그리고 언제 준비했는지 북어포 하나와 잔 그리고 소주병을 꺼낸다.
나는 얼른 소주병을 땃다. 그녀는 잔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잔을 채웠다.
그녀는 부언진 술을 묘에다 뿌리고 난뒤 절을 한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녀를 향해 서 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묘는 요절한 그 여자 남편의 묘였다. 그 여자의  남편은 결혼후 1년만에 죽었단다. 서라벌 예고를 졸업하고 야생화라는 동인으로 활동하던 당시 문단에서 촉망받는 시인이단다. 어느날  그녀의 남편은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집에 돌아 왔는데 방안에 눕자마자 숨을 몰아쉬고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했다. 참으로 인간 생명의 덧없음이라고 할까...
한동안 미친사람 같던 그녀는 유복자인 민아를 낳았고 생계 수단으로 빵집을 시작한 것이다.
 
"자, 가자 이제 됐어. 오늘이 이이 제삿날이야. 이제 안올거야. 다시는 안올거야...가자, 응"
"..."

난 슬퍼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무스날을 해야 할까?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고 할 수도 없었다. 눈가가 젖었던 그녀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무언가 작심한 사람처럼 그녀는 슬픔을 떨구어 내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 이제 천천히 가자. 가면서 쉬고 쉬다가 가자 응?"
"네.."
"저기좀봐 저수지 물잠자리 아직도 짝짓기하고 있네..."

올라갈 때 본 그 잠자리인지는 몰라도 까만 물잠자리가 쌍쌍놀이를 게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가를 따라 나 있는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청정지대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졌는데 초록햇살은 수속에 바람을 가끔씩 일으켜 춤을 추고 난 그녀의 종처럼 초록스커트 뒤를 기쁘게만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