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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꼬리?


BY 今風泉(隱秘) 2003-07-07

"어딜 가는거예요?"
"가보면 알아. 내가 가면서 알려줄께.."

신흥동 버스정류장에서 그녀와 난 속리산으로 가는 버스를 탓다. 그 당시의 가장 빠른 교통수단인 직행버스는 참으로 의자도 편하고 창밖을 보기에도 불편함이 없는 고급 버스가 아닌가.
빈좌석이 대여섯개 보였다. 나를 창쪽으로 앉힌 그녀의 표정은 애매모호하다. 초록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가 찰랑거리는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섹시함까지 곁들여 나를 혼돈속으로 몰아 넣고 있었다.

"어디 가는지 궁금하지?"
"네..도깨비에 홀린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도깨비잖아^^"
"속리산에 가는거예요? 차가 속리산 가는 차네요.."
"응, 속리산쪽으로 가는거야..."

옥천을 지난다. 보은 쪽으로 접어들어 옥천 구읍을 지나면 2차선 도로가 뱀모양으로 꿈틀거린다.
옥수수 수염이 붉은색을 띄고 고구마 넝쿨이 온통 밭을 덮혀 있어 참으로 싱싱하다. 길옆에 참외를 파는 원두막들이 장사준비를 하나보다.

우리 아버지의 고향은 화령이라는 곳이다. 보은에서 80여리 쯤 되는 조그만 면소재이다. 5일장이 서던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본적이 있는데, 그때 이 길로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이 몇 번 있다.

"얼굴이 붉어졌네..."
"네..그래요. 너무 좋아서 그런가봐요..."

그녀가 내 무릎에 손을 얹었다. 갑자기 열이 올랐다. 너무도 당황한 모양인가보다. 얼굴이 그래서 붉어졌겠지. 달아오르는 속을 억제하며 난 창박을 주시하는척 했지만 모든 신경이 그녀의 손쪽에 가 있었다.

"나, 좀 기대도 돼지..?"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네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후~ 몸이 불탈 것 같았다.

"피곤하신가봐요?"

난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는 기댄체 얇은 미소만 짓는다.

"저기 보이지. 저 산 말야. 아니 이 고개...이 고개가 문티재라는 고개야...."
"네..."
"이 고개에는 추억이 많지..."
"무슨 추억이요?"
"응, 추억이 많아. 벚찌의 추억이라고 할까..."
".........."

문티재를 이내 버스가 넘어간다. 그리고 금새 보은읍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린다.

"화장실 안가?"
"네...가야죠"

보은읍내 정류장에 버스가 서자 난 부푼 몸을 식히려는 듯 얼른 화장실로 갔다.
남녀 화장실로 각자 들어간다. 갑자기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몸 구석구석에 그녀의 체온이 남아 혼미한 육신이 끈적거린다.

"어디 가는걸까?"

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화장실 창문으로 볼일을 보면서 내다보는 내몸이 진저리를 쳤다. 아마도 내 뇌속에 잔영으로 남은 그녀의 스커트 아래 하얗고 긴 다리 때문인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은 정말 좋을 때 몸을 부르르 떨지 않던가...

"자, 어서 오세요 바로 출발 합니다."

보은에서 사람들이 거반 내리고 버스는 헐렁했다.

"배고프지 않어?"
"네..아뇨.."
"좀만 기다려 말티고개 날망에 가면 장사꾼이 있으니까 거기 가서 커피도 먹고 간식좀 사먹자 응..."
"네...편한대로 하세요"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리산 종점지를 향해 간다. 이내 그녀가 말하는 말티고개로 향하는 모양이다. 설레임이 가득한 그녀가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창밖의 펼쳐지는 풍경과 지리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여기가 아마도 그녀의 고향인듯도 하고...아니면...

이윽고 말티재라는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낚시꾼도 없고 배도 없는 한적한 호수의 중간으로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가 바로 법주사로 들어가는 말티재라고 그녀가 일러 주었다.

열두구비를 돌아 정상에 오르니 소나무가 아래로 구름처럼 널려 있고 그 가운데 2차선 도로가 가지런하게 그림처럼 나 있다. 우린 정상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갈거야"
"네...."

어디를 가느냐 무엇하러 가는냐 누구에게 가느냐 물어 보지 않기로 했다. 그녀와 둘이라면 아무 곳이면 어떻겠는가. 미리 알아 버려 꿈이 깨질양이라면 그저 그녀가 이끈느대로 가는거지

예상대로 커피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좌판에 함께 놓여 있는 찐빵이 더없이 먹음직 스러웠다.

"찐빵 먹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찐빵을 푸짐하게 산다.

"자, 이리와 앉아"

그녀와 난 벤취에 마주 앉았다. 김이 모락거리는 찐빵을 그녀의 예쁜손이 꺼낸다. 뜨거움을 이기려 손을 호호불다가 빵을 내 입에 댄다.

"먼저 드세요."
"남자잖아..한입 먹어.."

나는 할 수 없이 빵을 물어 땠다. 그녀가 아주 정답게 웃는다. 그리고 남은 반쪽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입안으로 다 넣고는 참으로 정겨운 표정을 짓느다.

"참 이상하네..도깨비에 홀렸나..여우에 홀렸나..."

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 예쁜 여우가 내 앞에 그렇게 꼬리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