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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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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BY 今風泉(隱秘) 2003-07-05

이발소에서 머리를 깍으며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가끔 내 까까 머리를 만진다. 그 순간의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싫지는 않다.

"머리 언제 길러..머리 기르면 징그럽겠네 ㅎㅎ"
"뭐가 징그러워요?"
"그냥...지금이 좋다는 얘기지 ㅎㅎ."
"전 싫어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반짝이는 머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 오다가 빵집을 쳐다보니 그녀가 낮선 남자가 앉아 있다.
누굴까? 낮선 얼굴인데....
난 가던 발길을 돌려 가게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냥 들어 갈까 생각도 했지만 남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 몸을 비켜 안을 살피기로 했다.

다정해 보이는 두사람. 남자의 나이는 그녀보다 좀은 더 먹은 것 같았고 멀리서 보아도 남자의 외모가 헨섬하고 지적으로 느껴졌다.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남자가 밖으로 나온다. 후리후리한 키에 까만 신사정장이 잘 어울린다.
백색 승용차를 타고 떠나는 남자의 등뒤로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누굴까? 저렇게 만족한 얼굴을 본적은 일찍이 없었는데...

나는 어슬렁 어슬렁 빵집문을 열고 능청스럽게 들어 섰다.

"누구예요?"

그녀가 흠칫 놀라는 것같기도 하였지만 그건 내 탓이라고 느껴졌다.

"응, 사촌 오빠..."
"사촌 오빠요. 어디 사는데요?"

나의 말이 거칠어졌는가 그녀가 좀 당황한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응, 천안 살지...건설회사 한데.."
"뭐하러 왔어요? 왜 왔어요?"

그녀가 픽 웃었다.

"왜그래 그냥 나 보러 왔지...앉아.. 머리 깍았네..."

그녀가 나를 끌어 앉힌다. 그리고 박박머리를 어루 만지며 말한다.

"이번 토요일날 나하고 같이 어디좀 갈래?"
"어디요?"
"가보면 알아.."
"누구누구 가죠?..."
"나하고 둘이지 또 누가 있어.."
"네....그런데..."

어디를 왜 가는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둘이 간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게는 어떡하죠?"
"응, 하루 닫지 뭐.."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번 토요일이라면 3일후가 아닌가..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네.."
"네...."
"그러게 좋아.."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꿈이 꿈이 꿈이 가슴에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창화하고 있었다.

"그날 10시에 신흥동 버스타는데 있지...그리로 나와..."
"근데 뭘 입고 가죠 옷이 별론데..."
"응, 그거..그냥와 아무거나 입어도 돼......."

옷이 귀한 시절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새 엄마는 나에 대해 관심은 눈꼽만큼도 없고 더욱이 아버지와 가게에서 먹고자고 하여 얼굴 보기도 힘들었으므로 늘 할머니가 사다주는 시대에 뒤떨어진 최소한의 옷을 입어야 하는 나로선 나들이 옷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부터 난 많은 꿈을 꾸었다. 토요일에 다가올 그녀와의 여행에 대한 꿈을 덧없이 꾸었던 것이다. 정말 꿈은 즐거운 것이고 더욱이 오르지 못할 나무같은 그녀와의 여행이라는 횡재(?)에의 기대는 구름을 나는 기분이랄까 하늘이 늘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