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아무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버진 그날 이후로 집에 발길을 뚝 끊으셨고......어머님은 화랑일이 바쁘시다면서 나와 얼굴 마주 대하시길 꺼리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셨다.
연수언니만 내게 자기가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준다며 내게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다독여 줬다.
그때 막내 고모님이 하신 말씀은 뭐였을까?
엄말 우현이 아버지에게 빼앗은 날 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막내 고모님 말에 아버지가.......표정 변화 거의 없으신 아버지가 그렇게 놀란듯..충격을 받았던 걸까....?
대체 .....무슨일이 있었기에......
엄마와 우현이 아버지......어머니....거기에 아버지까지......막내고모가 무언가 실마리를 쥐고 있는것 같은데........
가슴이 답답했다.
이젠....더는 아무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늘 민정이가 걸렸다.
가슴 밑바닥에 늘 민정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그날.....민정이의 정신상태가 불안하다고 느꼈던 그날 이후로 내내 걸렸었다.
목안 깊숙이 걸려 잘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잊을 만하면 생각나서 상처를 내는 그런 작은 생체기......민정이가 그랬다.
약을 먹을 만큼 절망적이였던 걸까....?
우현이 말로는 형님과의 일이 잘 되어 간다고 했는데......
민정이의 우현이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컸던 걸까...?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그리 무모할 만큼......
민정인 다행이 위세척을 빨리 시도해서 목숨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모양......공허한 눈빛으로 허공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집 식구는 절대 면회 사절이라고 하면서 들여 보내주지 않고 있는데 민혁 오빠가 진수오빠에게 연락을 취해서 그나마 알고 있는 사실이였다.
민혁오빠도 좀 많이 당황하고 놀랐다 한다.
상태가 좀 심각하다고 했다.
왜 살렸냐고 .....그냥 죽게 버려두지 왜 살렸냐고.... 정신이 들자 마자 한차례 난리였단다.
팔목에 꼽혀 있는 링겔주사 바늘을 빼고......말리는 사람을 너나없이 후려치고.....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살렸냐구.....
거의 식음을 전페하고 누워만 있다고 했다.
우현이 두 차례 방문을 했지만......설득해도 소용이 없는 얼굴로 ....여직 물 한모금 입에 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막내 이모부 님도.....이젠 우현이에게 청을 넣고 있다고했다.
제발 맘을 돌릴수 없냐고.......
우현인 어쩌고 있는지.........내게 한번도 민정이에 대한 얘긴 없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다는걸 알텐데......
아마도 괴로울 거다.
집에서....주위에서 넣는 압력이.......
그러던 금요일 점심 시간이였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경리 인 미정씨가 내게 메모를 줬다.
정다영.....?
우현이 어머님 이셨다.
밑에 다방에서 기다리신다는......
괜히....가슴이 떨렸다.
왜 일까.....?
왜 ......어머님이 날 보자고 하는걸까...?
올라오는게 더디게 느껴지는 엘리베이터를 보다가 택한 계단인데........선택이 틀렸나 보다.
한발 한발 디디는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천근 만근이나 되는 지게을 등에 업고 걷는 느낌.....
고지가 눈앞에 보이면 바로 엎어져 쓰러질 것처럼 힘이 들었다.
겨우 5층인데.....
평소 바쁘면 뛰어서 다니는 길인데.....
오늘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점심 시간 맞춰 끝난 회의.......기다리신지......10분 남짓.......
빌딩 지하에 있는 커피 숍.....하이델베르그......
잔잔한 쇼팽이 피아노 곡이 흐르고 있었다.
입구 양옆으로 붙어있는 전신 거울에 잠깐 멈췄다.
머리는.....화장은......입고 있는 옷은......?
모든게 신경이 쓰였다.
분명......날 보러 일부러 나온신 걸텐데......
며칠전 그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얘길 들고 오셨을 텐데.....
내가 이쁘게 보여봤자.......저분은 내게.......아픔을 주려고 오셨을 텐데.....
그냥......메모 전달 받지 못한것 처럼......그래버릴까....?
그럼....?
여기서 그냥 돌아가버림......
다음에 또 다시 날 만나러 오실까.....?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우현이.......오늘은 그냥......못 전해 들은척 하고 돌아설까...?
저녁에 우현이 만나서 .......어머님이 날 보러 오셨는데.....어쩜 좋으냐고 물어본 다음에...그 다음에 만날까....?
손안에 땀이 베어 나왔다.
얼핏 본 눈가에 물기가 스쳤다.
이럼 안되지.....
어쩜 나보다 더 힘들게 나오셨을지도 모르시는데.....
까만색........빌로드 정장에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곱게 입으신......정말 선고우신 어머님이셨다.
녹차를 마주 하고 앉잤다.
차가 나오때 까지 그저 날 찬찬히 바라만 보셨다.
앉으면서 잠시 눈인사 하고.......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어 침묵하고 있던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