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남자가 우리집에 사는지는 5년째다.
그가 건넛방으로 이사 올 때 우리 식구는 네식구였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외동딸 노처녀 나.
무관심으로 살아가던 지난 여름 우리식구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사연이 길지만...
그건 그렇고 난 오늘 홀애비의 방을 들어온 것이다. 왜 주인 없는 그 남자의 방을 침입(?)한걸까..
내 나이 서른여섯. 시집갈 생각 같은 건 아예 가슴에 없었건만 왜 집도 절도 없는 놈팽이(?)의 방을 기웃거리는가...그것도 사람이 없는 방에 들어와 두리번거리고 있는 꼴이라니...알다가도 모를 나의 아래 위를 훑어 보며 실소하고 말았다.
사과궤짝같은 책상 하나에 제멋대로 나딩굴어진 꽂이의 책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뭐하는 남자인가. 누구도 그가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늘 우수에 잠겨 있고, 벙어리 미소만 짓는 남자. 왜 이 남자는 우리집에 세를 살게 되었고 나는 언제부터 그 남자의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걸까?
노트가 하나 있다. 볼까? 말까? 괜찮을까?
GIANT라는 글자가 찍힌 밤색 노트를 열자 깨알처럼 박힌 글씨가 나온다. 난 글씨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비밀의 문을 들어가 이름모를 궁전의 비밀을 벗기는 기분으로 난 개미??같이 쓰여진 글씨를 놓지지 않으려는 듯 시선으로 길을 물었다.
긴장과 흥분이 뒤섞여 심장의 피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나보았다. 읽어가면 갈수록 내 가슴은 더 녹여진다. 그랬구나. 이런일이 있었구나. 알 수 없는 일이야. 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그렇다면 이 남자는...그럴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찾아 나선걸까?
범죄자! 미궁속의 남자! 완전범죄를 저지른 남자?
아니면 소설을 쓴걸까? 더 읽어 보면 알겠지.. 난 그 노트를 더욱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어만 가는 이야기들... 그래 그남자가 아무래도...글에 나타난 여자는 나를 말하는게 아닐까...
" 곱기도하여라. 햇살맞은 아침이슬처럼 빛나는 눈망울. 그녀가 창을 열면 내 가슴은 막혀 온다. 그리운 비둘기 날아 오르면 진한 내 사모는 말없이 불을 지피지만 내겐 아직 용기가 없다. 왜냐하면 난 가슴 만 있기 때문에..."
가슴만..? 가슴만 있다는 말은...?
사랑을 준비할 여건이 안되었다는 말일까?
"붉은 색을 보면 정말 XX이 생각난다. 그대 난 미쳤었나보다. 네 가슴에 스민 피속에 절제할 수 없는 용광로가 폭발했나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난 무엇을 원한 것일까? 아담의 피일까? 아니면 아벨의 탈을 쓴 가인의 피가 나를 쏘아 올린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문단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이상한 단어들과 해석할 수 없는 문장들이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다. 난 다른 책들이 없나 뒤적여 보았다. 그러나 다른 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깨알글씨는 계속 널려져 있고... 좀더 신중히 읽어야 할 것 같은 내용들로 나를 혼란하게 만드는 줄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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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찌 자세히 볼 수 있을까? 복사... 그래 그래야 되겠지. 그렇다면 오늘은 안되잖아 그 남자 올 시간이 다 되었잖아. 난 제자리에 그 책을 꽂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아니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자꾸 깨알 글씨가 떠오른다. 다음 얘기가 궁금해 진다. 무슨 꼬투리가 잇을 것 같은 노트. 난 내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 사는 집주인 노처녀. 그리고 5년전에 세든 불가사의의 남자. 그리고 다른 방에 사는 신혼부부와 두아이들. 오래 살았지만 서로의 가슴을 잘 알지 못하는 한지붕 세가족.
아버지 어머니 저를 두고 그렇게 혼자 가셨나요..외로워요 어머니..혼자 있는 오후가 갑자기 서른여섯 여자의 처녀의 성에 외로운 비를 뿌리고 있나보다. 갑자기 둑이 무너지려나... 默男 - 그 사람을 부르는 나의 이름! 묵남의 정체는 무엇인가...오늘은 왜 그 남자의 족보를 양파처럼 자꾸 까고 싶을까? 참으로 사람의 운명은 하잖은 곳에서 발로한다더니..그런걸까...여하간 그 노트를 본 것은 내게 새로운 긴장이 되고 있었다. 곧 들어오겠지.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 했으면 좋겠네.. 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