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의 간질거림으로 눈을 뜬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고 여느 때와 다른 부산을 떨었다. 세안을 하고 머리까지 감은 그녀는 수건을 두른채 거울 앞에 앉았다. 남편 뒷바라지, 샘 많은 두 아이 사랑 나눠 주기로 눈코 뜰 새 없던 그녀로서는 얼굴에 로션마저 바르지 않은 날이 태반이었다. 다행히 친정 엄마의 고운 피부를 닮아 그런대로 봐줄만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인다고 할까. 코 주변의 피부에 땀구멍이 도두라져 보였다.
그녀는 화운데이숀을 가득 찍어다 코 주변에 살포시 펴 발랐다. 퍼져 가는 화운데이숀에 의해 땀구멍이 가려지는 듯 했지만 자꾸만 마흔의 흔적을 가리려는 자신이 퍽이나 한심스러웠다.
기초 화장에서 눈썹, 아이라인, 볼터치를 지나 립스틱을 마무리로 부분 화장까지 마친 그녀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오랜 만에 화장을 해서일까?
꼭 낯선 얼굴 같아 싫었지만 예의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면접인데 어떤 옷이 좋을까?"
막내를 출산 한 뒤 한 없이 불어난 몸 때문에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던 몇벌의 정장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신혼 여행 때 입었던 까만 롱 조끼가 그녀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들고 놓아 주질 않았지만 이미 부어버릴 대로 부어버린 살덩이를 떠올린 그녀는 가장 최근에 산 박스형 곤색 남방에 흰 면바지를 꺼내 주섬주섬 입었다.
"아휴 , 이놈의 뱃살 . 어쩌누 ."
그녀는 늘 하던 것처럼 불룩한 배를 손바닥으로 톡톡 쳐대었다.
오늘 따라 불룩한 그녀의 배가 눈에 가시처럼 다가왔다.
리포터를 하려면 그래도 한 인물은 해야 할 텐데...
또 몸매는 어떻고. 팔등신은 안돼도 들어가고 나올 때는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냐 아냐. 뭐 인물로 리포터 하나. 말과 글로 하는 거지.
말과 글이라면 그런대로 자신 있잖아.
이렇게 마음 속 두 갈등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였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밖으로 내몰았다.
신문사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서니 서너명의 남자 직원과 그들이 뿜어대는 부연 담배 연기가 그녀를 맞았다.
" 저 어제 리포터 모집 보고 전화 한 사람인데요? "
"아. 그렇습니까? 이 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녀보다 훨씬 더 살덩이가 부풀어올라 배가 가슴을 능가하는 중년의 남자가 일어서서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가져 오셨겠죠?"
"네,"
자신이 팀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그녀가 내미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훑어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 수상 경력이 대단하군요. 우리 신문사 리포터는 일반 리포터와 달리 기사까지 써야 하므로 글솜씨가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리고 인터뷰시 대화가 필요하므로 어느 정도의 말솜씨도 필요하다고 볼 때 000씨는 웅변과 글재주를 둘 갖추었으니 저격입니다. 하지만 본사에서 서류 심사가 있은 뒤 합격 여부가 결정되므로 차후 전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
서류를 제출하고 신문사를 나온 그녀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웬지 모를 기쁭이 온 몸울 휘돌았다.
늘 남편과 아이들의 그늘에 가려 제 빛을 찾지못했던 그녀. 그래서 무능하기만 하던 그녀를 새삼 알아주고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 동안 가족들을 위해 내 안의 모든 것을 죽이고만 살지 않았던가. 이제 그들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내 삶도 찾아가며 살아야해. 그들의 그늘이 아닌 내 그림자를 만들며 그들과 같이 행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