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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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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넘는 마흔길


BY 아지매 2003-05-31

헬스로 가뿐해진 몸과 마음 탓이었을까?
그녀는 저녁 밥상에 남편이 좋아하는 섭산적을 올렸다.
"어 웬일이야? 오늘 무슨 날인가? 상이 빛나보이니..."
남편은 군침을 삼키며 상 앞에 앉더니 소주 한 병 가져 오란다. 애주가인 남편은 늘 이렇게 안주감이 있으면 소주 한 병을 홀로 (그녀는 전혀 술을 못해) 달게 마신다. 커- 소리와 함께 그런 남편을 보면 그녀는 술을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이럴 때 같이 한 두잔 거든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역시 당신 섭산적 솜씨는 일품이야. 그런데 최근 그 솜씨를 꽤 오랫동안 발휘하지 않았지. 앞으로 종종 부탁합니다 마나님."
그녀는 남편의 넉살에 대답대신 옅으게 웃으며 남편의 달아오른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유달리 길고 가는 목, 그래서 와이셔츠는 반드시 정격 사이즈인 90 아니면 부자연스런 남편이다. 오늘 따라 그런 남편의 목이 더 가늘어 보여 불안스럽다. 그리고 고집스레 염색하지 않은 남편의 새하얀 머리칼이 서글펐다. 문득 그녀는 그녀만이 마흔 언덕을 힘겹게 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그 언덕 길에 같이 서 있음을 절감했다.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 짙어보이는 반점이 눈동자의 그림자로 드리워오며 그녀의 가슴을 흔들었다.
"참, 당신 오늘부터 헬스 다니기로 했지? 어디 보자. 뱃살 좀 빠졌나."
남편은 장난스레 다가와 그녀의 배를 한움큼 쥐더니 여전히 허리가 없다며 돼지아줌마라고 비양거린다.
"칫, 어디 하루 한다고 살들이 달아나나? 두고봐 몇달 후면 당신이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질테니..."
" 제발 그래라. 제발.."
남편은 마지막 잔을 비우며 냉소를 보냈지만 그녀는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그날 밤 술 기운을 빌어 남편의 사랑은 열렬했다. 그녀 역시 마흔의 나이를 잊을 정도로 남편에게 착 달라붙어 사랑을 나눴다. 두 손 꼭 쥐고 마흔 언덕 길 넘어갈 양으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길, 갑작스레 찾아든 내리막길 같은 마흔 앞에서 당혹해야만 했던 날들, 마치 저 혼자만이 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허전하고 힘겨웠던 길이 두 손 맞잡은 순간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래, 나 혼자만이 겪는 서글픔이 아냐. 그이도 내심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마흔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 거야.'
이런 생각 때문일까? 사랑을 나눈 뒤 등을 돌린채 코를 고는 남편의 무심함 마저 껴안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