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난리를 치고 이틀이 지났지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내는 작은방에서 애기랑 곤히 자고있더군요.
가만히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새벽내내 애기한테 시달렸을테죠..피곤함이 가득한 얼굴..
눈밑에 기미도 좀 보이고,
그런데, 자는 아내의 얼굴이 둘째녀석이랑 친구해도 될만큼,
참 아기같더군요.
문득, 집사람을 처음 만났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옆집에 살던 이웃이였죠.
후훗..그 시골마을.. 감나무집딸..
오빠동생 하던 우리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때,한바탕 엄마들끼리
싸늘한 냉전이 흐르기도 했었는데...
절대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를 열두번은 더 했을겁니다.
결혼과 함께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벗어나자고,
그렇게 서울로 온거죠.
가진것 쥐뿔만큼도 없는나만 믿고 무작정 상경한 시골소녀..
작은 키에 뽀얀 얼굴을 가졌던 소녀..
'이 사람아..내가 이런 당신을 두고 어디 바람을 피겠수..
나도 양심이 있는 놈인데..
나 인생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아빠! "
앗..너무 감상에 젖었나봐요..
넋놓고 앉아있다가 딸래미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네요.
"은비야..조용히해..엄마랑 은석이는 새벽에 잠을 못자서
더 자야하거든.."
"아빠..나 유치원 준비해야하는데.."
"아빠가 도와줄께..자아..세수하고..옷 갈아입자.."
살짝 딸래미랑 같이 나왔습니다.
점심때쯤이 되니 핸드폰이 울리더군요.
"언제 나간거야? 깨우지 그랬어? 아침도 못먹었잖아..
이그..이 웬수.."
사실 오늘은 집사람 생일입니다.
전혀 모르는 눈치네요..
얼마나 살기 고달팠으면 날자가는것도 모르고 있으려나..
퇴근길...무얼 좋아할까싶어 궁리끝에 꽃을 샀습니다.
그래, 옛날엔 꽃만 갖다주면 얼굴빨게지며 좋아하던데..
아마 좋아하겠지..후훗..
일년에 한번뿐인 생일인데, 용돈 덜 쓸 각오하고, 좀 크게
만들어 들고가던 차였지요..
그런데 남자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가려니 어찌 그렇게
쑥스럽던지요..
오늘따라 아주머니들을 많이도 만나네요..에휴..
"어머...은비아빠..오늘 무슨날인가봐요?"
"어머나..꽃 정말 예쁘네..은비엄마 좋겠네.."
현관문을 여는 아내에게 꽃을 들이밀었죠.
어머낫...잠깐 깜짝 놀라며 좋아하더니만..
이내 하는말이....
"이거 꽤 비싸겠네...얼마줬어? 응? 얼마줬어?
차라리 돈으로 주지..
요즘엔 현찰이 최곤데..."
아마도 무의식중에 나온말이겠죠.
자기도 피식 웃더군요.
그렇지만... 꽃을 사들고 온 저는 뭡니까?
그런 사소한 곳에 돈이나 쏟아붓는 미친놈 밖에 더됩니까?
갑자기 화가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