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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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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63

[제1회]


BY ich63 2003-04-29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번째 써 보는 글 입니다.
많이 바빠서 자주 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자주자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지적도 아끼지 말아주십시요.
한 아이의 엄마와 로봇을 개발하는 과학자.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쓰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몹시 우울하다.
내게 주어진 일상의 일들은 이미 내 체력의 한계를 벗어났다.
가게도 봐야하고 아이들 숙제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도 온통 내 차지다.
딸애는 이제 자기방 정도는 정리할 나이도 되었건만
남동생보다도 더 어질런다.
딸애의 방 별칭은 쓰레기통이다.
치워주고 나서 10분 후에 들어가면 이미 발디디기가 힘들다.
색종이로 오리고 만들고 온 방이 종이 조각과 가위, 풀로 가득하다. 문을 열기가 두렵다. 어질러진 방을 보면 짜증이 또 날 것이므로.

베란다로 빨래를 걷으러 나갔더니 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겨울비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졌다.
아이들이 우산도 안가지고 학원엘 갔는데
학원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간다. 빨래도 걷지않고 차 키를 집어들고
후다닥 나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 학원으로 전화를 건다.
가끔씩 수업이 일찍 끝나는 경우도 있다.
통화가 된 후에야 비로소 느긋하게 운전을 한다.
차를 세워두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수업중이다.
조금 늦어지나 보다.
제 시간에 끝내 줘야 딸애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는데 ......
다시 딸 애 학원에 전화를 건다.
딸애 학원은 종합반이라 전달이 쉽지 않다.
하여간 부탁을 해본다. 7시 10분에야 아들 수업이 끝났다.
아들은 입이 벌어진다. 무조건 엄마가 좋은 아들이다.
아들 가방을 대신 들고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서둘러 나온다.
5분 거리지만 딸애가 연락을 받았는지 걱정이 된다.
오늘 따라 신호마다 걸린다.
딸 애가 이비를 맞고 걸어가면 어쩌나 염려가 된다.
늦은 시간 임에도 딸애는 셔틀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기다리기 싫다는게 이유다.
5학년인데도 체구는 2학년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걱정이 된다.
누군가를 딸애에게 해꾸지를 할까봐.
하지만 딸애는 너무 무심하다.
엄마의 걱정을 걱정도 팔자라며 일축해 버린다.
며칠전에도 데리러 갔다가 약간 늦어져서 학원으로 뛰어올라갔다
셔틀버스에 올라갔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집근처에 와서야
혼자 걸어가는 딸애를 찾았다.
딸애는 별 감동도 없이 왜 왔느냐고 했다.

"우리 이쁜 딸 누가 잡아갈까봐."

"고슴도치도 지 새낀 이쁘대."

"아냐, 우리 딸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이뻐.
니가 웃으면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는거 알어? 얼마나 귀여운데."

"엄마, 엄마 안경 바꿔야 겠다."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딸애는 그렇게 타박을 했다.



차세우기가 뭐해서 아들에게 누나 데리고 나오라고 말한다.
아들은 툴툴거리며 간다.
이해심없는 누나 별로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많이 이해해 주고 참아주는 착한동생이다.
차에 타자마자 딸애는 불만이다.

"닭꼬치 사먹으려고 돈 챙겨 왔는데....."

얼굴이 부어있다.
집에 오는 길에 포장마차가 생겼는데
닭꼬치하나 사먹고 오는 맛이 괜찮았나 보다.
바쁜 엄마 시간 쪼개서 나온 걸 감사할줄도 모르고
단지 지가 사먹으려고 했던 것을 먹지 못함만 속상한 딸.
자연 내 목소리도 부어 나온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비 맞고 가려 했어?
버스 타는데도 한참 가야 하는데. 우산도 없이.
넌 고마움도 모르니? 다시는 데리러 오나 봐라. 나쁜 기집애."

"누가 데리러 오래?"

"엄마, 이제 누난 데리러 오지마, 나만 데리러 와. "

"둘다 안가."

그러면서도 나는 안다.
당장 내일이라도 비가 오면 서둘러 차키를 들고 뛰쳐나오리란 것을.



딸 애가 커 가면서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딸애는 머리가 좀 좋은 편이다. 뭐든 좀 쉽게 배운다.
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요구를 할 수 없었지만
뭐든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희망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엔 졸업앨범 사달라는 말도 못해서 앨범이 없다. 엄마는 왜 말 안했냐며 나무랬지만 매일 매일 쌀 한봉지,
연탄 두장씩 사 들고 들어오는 엄마에게 앨범비를
청구할 수가 없었다.
가난이 나의 유년을 송두리채 집어 삼켰다.

겉으론 세상에서 제일 착한 딸이었지만 내 가슴엔 늘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능력도 없으면서 줄줄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그 뻔뻔 스러움에 치를 떨었다.
삶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 오히려 해만 주는 이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저주스러움.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런 아버지와 살고 있는 엄마는 더 더욱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