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곁에서 보기에도 안스럴만큼 용하가 식은땀을 흘려댔다.
목련은 그런 용하가 은근히 걱정스러워졌다
"괜챦은거에요 선배?"
"어...미안. 잠시 속이 안좋았나봐"
아까와는 달리 흔들리는 용하의 눈빛을 보면서
목련은 가방을 뒤져 티슈를 찾아 한장 건넸다.
"아휴 이 땀좀봐. 이걸로 좀 닦아요"
"고맙다."
용하는 목련이 건넨 티슈를 잡고
이마의 땀을 티슈로 몇번찍어서 눌렀다.
얼마나 비지땀을 흘려댔던지 티슈에 땀이 흡수가 되어 젖어버릴 정도였다.
"선배...왜그래요, 안색이 너무 안좋아요
정말 괜챦은거에요?"
"괜챦아질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예"
용하의 시선이 허공을 가르고 먼 어느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무엇일까 아까 그 희선이란 여선배와 용하사이에 얽힌 그 무엇은...
어떤것이 존재하는것일까.
"용하선배."
목련과 용하는 소리나는 쪽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희선이 주저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
"괜챦다면 지금 시간좀 내줄수 있으세요? 그냥 커피나 한잔해요."
"그래. 목련아 미안...잠깐만 다녀올게. 먼저 가도록 해"
"네 선배님"
용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희선일 향해서 걸어갔다.
호기심과 그리고 걱정스러움이 목련을 감쌌다
그러나 어쩔수없었다.
두사람 사이에 낄 그 무엇도 이유가 없는것이다.
목련은 그저 사라져가는 두사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
용하와 희선은 조금 사이를 두고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자판기앞에 도착을 했고
용하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자판기에 밀어넣고 있었다.
그는 물어보지도 않은채, 재빨리 메뉴중에 한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자판기에서 컵이 나왔고
커피가 흘러내렸다. 용하는 그것을 희선에게 건넸다.
"마시지."
"고마워요"
희선은 용하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프림만 넣은 커피를 좋아한다는것을.
'잊어버렸을꺼야' 라고 체념했던 그녀기에
그것만으로도 기쁜 희선이었다.
"잊어버리지 않았네요...기억을 해주다니. 기뻐요."
용하는 말없이 밀크커피를 뽑아들었다.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처음부터 끝까지
만난날부터 그리고 헤어져 왔던 지금까지...아니 재회한 이순간까지도.
"왠일로 순순히 복학하는것을 허락하셨을까
희선이네 부모님께서."
희선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 후후 불기 시작했다.
"시작한것은 끝을 봐야한다...그거 선배말이었던거 같은데요?"
그말에 싱긋 용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랬다 희선이 포기하려던날...
그가 그런말을 그녀에게 건넸던 것이다.
"그래...그랬었던것도 같아.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서두."
"우린 그때, 왜 더 철저하게 바보가 되지 못했을까요...
그랬다면 더 좋았을텐데.
바보는 정말 쉬운게 아니란거
그리고 아무나 할수없다는것이란걸 내내 깨달았죠.
선배도 나도...바보가 되기엔 너무 힘든 사람들이쟎아요"
희선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긴 갈색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에 끼어진
반짝이는 반지를 앞으로 내밀며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약혼했어요."
-쿵
용하는 너무놀라서 하마터면 뜨거운 커피를 쏟을뻔했다
그렇지만 가까스로 그는 그것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것을 보일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지금 그녀에게 축하를 건네야했다.
쉽진 않겠지만서두.
"그랬구나...언제?"
"얼마전에요. 선배알다시피 그사람이랑...
그리고 그사람이 도와줬어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가족
전체를 설득해주었죠. 학업은 마쳐야한다는게 그의 소신이에요
그리고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일을 할수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고 하더군요."
"잘됐군...희선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뤄졌으니....축...축하해."
"고마워요. 용하선배."
희선은 다마신 종이컵을 분리수거기에 넣었다.
컵은 또르르 내려가서 다른 컵들위에 얌전히 얹혀졌다.
"잘마셨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후배로서요"
희선이 먼저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다가 용하역시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손을 잡는순간 찌르르한 아픔이 그의 가슴을 스쳐갔다.
그는 애써 그 감정을 눌러야했다.
"그래. 언제든 도와줄게 있으면 연락해."
눈물이 쏟아질거같다. 바보처럼...
남자는 울면 안된다라고 항상 들어왔었는데.
할수있다면 이순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그였다.
그렇지만 안됐다.
그역시도 마음과는 달리, 눈물한방울 솟아나지 않았다.
억지로 그는 감정을 쓸어내리려했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가는 그녀를 그저 멍한히 바라봐야만 했다.
★
"선배니임- 괜챦으세요?"
안그럴려고해도 자꾸만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수 없는 목련이었다.
게다가 그는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고,
왠지 위태위태 아슬아슬해 보였기에...
목련은 용하를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괜챦아"
그렇지만 말과 달리, 용하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표현하진 않지만 왠지 금새라도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이 눈빛이 젖어있었다.
왠지 마음한구석 뭉클해옴을 느낀 목련은 마음어디선가
숨어있던 보호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이유에선지 그는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수있다면 목련은 그를 도와주고 싶었고,
고민을 함께 해주고 픈 심정이었다.
"선배님 있쟎아요 너무 힘들땐...
아주 잠시 주저앉는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그래서 잠시 쉬고, 다시 또 일어서서
씩씩하게 걸어가면 더 좋은게 아닐까요?"
목련의 말에 용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럴까?"
"그럼요."
용하는 아무말없이 가까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언가 심각한 분위기가 그를 휩싸이게했고
그 분위기는 또 목련을 압도했다.
그가 말하기 굳이 싫어한다면 묻지 않으리라.
목련은 잠시 옆에서 그냥 앉아있어 주었다.
"너말야...한번이라도 니가 너이고 싶지 않을때가 혹시 있었니?"
"네?"
용하의 말은 선뜻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대체 무슨소린지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이거다 라고 뚜렷이 생각나지지 않았다.
"나는...내가 내가 아니라면...좋겠다.
그럴수있다면...그렇지만 그건 너무 무리겠지?"
용하의 어두운 표정을 곁눈으로 보며,
목련은 그가 목련에게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자조적인 목소리로 자신에게 중얼거리는것임을 알았다.
"나를 버리고 싶어. 그렇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어.
그러니까 힘든거야."
목련은 수수께끼같은 그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가슴속에 그는 슬픔을 안고있단걸 그리고 괴로움을...
차마 뱉을수없는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걸
안타깝지만 그녀로서도 어떻게 해줄 방도가 없었다
그것이 못내 서글퍼졌다.
"선배...힘내요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은 잘될거에요
틀림없이 ...틀림없이 잘될거에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이 그녀가 해줄수있는 유일한 말이자
그리고 바램이기도했다.
그는 눈을 몇번 껌뻑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목련아...정말 그럴까...시간이 가면 어쩜...
조금은 무뎌지기도 하겠지
그때가 되면 아무렇지 않을수도 있을거야 그치?
그래...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믄요. 시간이 틀림없이 약이 되어줄거에요."
"음."
"제가 만일, 마법사라면 시간을 돌려줄수있을텐데요.
그럼 선배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 않을건데...
미안해요 해줄말이 힘내란 말밖에 없네요"
용하는 보일듯 말듯 미소를 가까스로 띄우고
목련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뒤로 돌아섰다.
얼핏 그가 고갤 돌릴때
목련은 보지 말아야할것을 보고만 느낌이었다.
틀림없이 물기가 한방울...선배의 눈에서 떨어졌다.
'울고있는걸까 그는?'
목련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아련한 아픔을 느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