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여름이 지나갔다.
방학동안엔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영어 회화학원엘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가끔은 태환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전화기를 물끄러미 내려가 보다가도,애써 외면해 보기도 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다시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였다.
캠퍼스 안을 거닐며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태환이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었다.
나의 예상이라면, 아마도 군대엘 갔을까...
우리과 에서도 남학생들이 하나둘씩 군대엘 가기 시작했다.
동기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니,처음엔 무심했지만,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 군대가지 않은 남학생 중에 한 애가 있었다.
재수를 해서 들어왔다는데,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애가 자꾸 친한척을 하는거였다.
괜히 아는척 하고, 커피마실래? 등등..
은정이와 다음강의 들으러 가는데, 역시나 마당발 은정이가 그런다.
"야, 희준이가 너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더라.."
"뭐? 난 전혀 생각이 없네..내 이상형도 아니구.."
희준이는 마침 우리집과 같은 방향이였다.
어느날,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타게되었다.
"와...지은아...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네.."
"어? 그, 그래..(에휴...여기서 만날게 뭐람..)"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니 우린 인연이 있나봐..그치?"
"칫..."
"야, 지은아..너 반지 예쁘다..어디서 산거니?"
"어머? 얘가 어딜...빼줄까? 구경할래?"
내 손을 잡고 싶다는 의미였겠지만, 나는 단호했다.
반지를 빼서 준다고 하니까 희준인 금새 수그러들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희준이와 같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우리과에서 모든 여자애들과 두루 친했다.
어울리는 친구들은 따로 있었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좋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명...영은 이라는 친구는 내게 쌀쌀맞았다.
그냥, 인사하는것도 그랬고, 말은 안했지만, 나한테만은 차가웠다.
서로 싸운것도 아니고 왜 그럴까..했는데,
마당발 은정이가 소식을 또 물어왔다.
"영은이가 희준이 좋아한다더라..희준인 너를 좋아하니..
니가 미웠겠지.."
난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그럼 둘이서 좋아하면 될것을..
내가 친구로서의 선을 그은 이후로 희준인 더이상 다가오지 못했고,
얼마후 그도 군대를 가게되었다.
캠퍼스의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갔다.
재밌는 축제에 같이갈 파트너가 없어 오죽하면
집에 있거나 시내서 친구들을 만났다.
낙엽진 거리를 팔짱끼고 걸을만한 변변한 남자친구도 아직 없이,
나의 1학년은 그렇게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