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후 다시 원래데로 돌아온 듯 해 반갑기도 했었지만 맘 속 깊은곳에서는 이혼한 큰언니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껴졌었다.
큰언니의 홀로서기를 우리들이 다같이 밀어주고 어떡하든 힘이 되어줬어야 했다는 걸 우린 왜 그때 몰랐을까...
큰언닌 혼자가 된 후 가족들 곁으로 올 수가 없었다.
형부란 작자가 계속해서 집으로 전화질을 해대며 이혼을 물리기만 하면 정말 사람되겠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식구들을 무슨 정신고문 시키는 마냥 힘들게 해서 큰언닌 집 근처 그자가 모르는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야 했었다.
혼자가 된 큰언니에게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줘야 될 우리들은 그때 이혼을 적극 권하고 이혼만이 살길 인 것처럼 큰언닐 다그쳤지만 막상 큰언니가 혼자가 되자 우리들도 모르게 맘 속 깊은 곳에선 이혼한 큰언니가 부담스럽게 자릴잡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우리들은 큰언니의 또다른 출가(?)를 은근슬쩍 외면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큰언닌 완전히 홀로 살게 되었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전혀 나은 생활도 아니었었다.
한 2.3년간 큰언닌 결혼생활로 인한 빚들을 언니 혼자서 갚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열심히 일에만 메달려야 했었다.
그런 큰언니에게서 우린 일말의 희망을 느꼈었구, 드디어 큰언니가 빚을 다 청산했을때 온 식구들이 모여 오래간만에 웃음이란 걸 입가에 피웠었었다.
또다시 큰언닌 좀 더 나은 곳으로 갈 정도의 여유가 생겨서 이사를 했다. 이제 큰언니에게선 예전의 어두운 그림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언닌 화사해져 갔었다.
그런 큰언닐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보시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첫외손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큰언닐 모질디 모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난 큰언니가 몇가지 보험을 불입해 둔 것을 알고 있으며, 모두다 조카앞으로 수익자를 지정해 놓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엄마와는 다른 시선으로 큰언닐 바라보게 되었었다.
이제 큰언닌 예전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으며 또 새로이 운전까지 배워서 매사에 열정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었다.
큰언닌 마치 삶을 다시 보게 된 게 마냥 신기한 듯 모든이에게 적극적이었고 그런 큰언니의 모습은 한번 결혼하고 이혼한 여자란 사실 조차 잊게 해 줄 정도였었다.
큰언닌 이혼 후 더 더욱 엄마와 친밀해 진듯 보였었다.
경우가 어쨌든 홀로 된 두 여자들로선 어떤 일종의 동지감같은 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만 큰언니가 새로 결혼을 하길 바랬었었다.
그때 우리 동생들도 모두 결혼해서 남들처럼 그냥그냥 잘 살고 있었기에 엄마로서는 항상 큰언니가 애처롭고 안되 보였었다.
또 젊은 나이에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그것도 남편이 있다가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질 엄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었기에 큰언니의 홀로서기를 더 못 견뎌했었었다.
하지만 큰언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니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이미 다 알아버렸기에 결혼이란 단어조차 불쾌하게 생각했었다.
혹 결혼이 지금 큰언니의 평안함을 앗아가기라도 하는양 끔찍해 했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었기에 난 큰언니의 결혼에 대해서 무관심해 하고 있었었다. 오히려 난 큰언니의 남자 보는 눈을 한마디로 우습게 여기고 있었었기에 큰언니의 홀로서기를 속으로 반기고 있었었다.
어느 날 큰언니가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얘기에 정신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었었다.
이제 큰언닌 예전의 자신감으로 온몸에서 힘이 느껴질 정도로 윤이나고 활기찼었는데 사고라니... 이럴 순 없다고 이를 갈아가면서 병원에 도착했었나 보다. 큰언니의 가벼운 사고에 그냥 멍해지기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큰언닌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말했다. 목 뒤쪽에 기부스를 하고 누운 큰언니 표정이나 몸짓을 봐서도 크게 염려할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었다.
정신을 차린후 난 그곳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한 사내를 보게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