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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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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빨간머리앤 2003-03-19

오히려 큰언닌 그런 우리들한테 보란듯이 더욱 더 삐딱선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큰언닌 세상 다 산 사람마냥 늦게 들어오기가 다반사였었으며, 술냄새까지 풀풀 풍기며 다녔었으니 이건 아예 대놓고 '나 이렇게 살건데! 그래서 어쩔건데?'하고 일종의 도전장을 던지는 사람마냥 달라져 있었었다.
난 진저리쳤었다. 예전의 살구빛 도는 건강한 볼은 가졌었구 언제나 부끄러운 듯 살짝 웃음기 머문 입가도 이뻤으며 거기에다가 큰언닌 모르는 팝송이 없을정도로 많은 음악을 알고 있었었다. 음악만이 아니라 큰언닌 글솜씨도 만만찮아서 큰언니가 만든 문집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올 정도였었다. 그런 큰언니 였었기에 지금의 큰언닌 도저히 내 어린 감성으론 받아들이기가 버거웠었다.
버거운 정도를 지나쳐 오히려 전혀 모르는 남이었으면 하는 미움으로 가득했었으니 말이다.

큰언닌 언제부턴가 예전의 대학생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었다.그때 같이 어울려 다니던 부류중의 한 언니였었는데 그 언니가 결혼후 이혼을 하고 작은 바가 있는 술집을 운영한다는 그곳에 큰언닌 하루가 멀다하고 퇴근후 달려갔으며 그 언니랑 술잔을 기울이고 거기에다가 낮선 남자와도 술을 하고 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엇었다. 이 모든 일들을 큰언닌 보란듯이 얘기했었고 우린 그래서 큰언니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훤히 알게 되었었다. 아니 더 오버해서 이젠 완전 젊은 여자가 술꾼이 다 되 가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우리들도 큰언니 면전에다 대고 같이 으르릉 거리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이건 피를 나눈 자매가 아니라 바로 웬수지간 이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큰언닐 이해해주고 감싸주었던 엄마(사실 우린 엄마의 이런 행동에 의아하기 까지 했었었다. 여잔 행동거지를 잘해야 시집을 잘가고 그래야 행복하게 잘살거라는 엄마의 철학에 위배되는 행동을 보여준 큰언니에게 그것도 시집도 안간 여자가 애까지 벴다는 데 엄만 오히려 쉬쉬하며 같은 공범이 되어가니 말이다)까지도 어느날 부턴지 모르게 큰언니에게 큰소리치는 날이 많아졌었다.

큰언닌 집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우린 전혀 그런 큰언니에게서 어떤 일말의 동정심조차 안가지고 있었었다.
우리들은 오히려 큰언니의 이런 행동거지로 혹여 우리들한테 불똥이라도 튀어 앞날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순전히 우리들의 이기적인 생각만으로도 다른 걸 염려주해 주고 배려해 줄 그럴 겨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였을까...

어느날 큰언닌 결혼 할 남자가 생겼다고 엄마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얘기를 했었고 엄만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이번엔 확실히 해 두잔 심
산이었는지 이것저것 알아보셨던 모양이었다.하지만 그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여자의 순결은 목숨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것으로 여기던 때였으니 이미 엄마의 큰딸은 용서할 수 없는 큰 흠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그걸 엄마또한 마음속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었기에 상대방 남자의 조건이 약간 당신 뜻에 못미치는 조건이었다 해도 오히려 한숨 놓으며 결혼을 허락해 주리라 여겼었었다.

그런데 그럴 줄로만 알고 있던 우리들에게 보여준 엄마의 태도는 너무도 완강하게 결혼을 반대하셨었다.

그남잔 다 기울어가는 집안의 장남이었으며, 무엇보다 큰언니를 알게 된 이유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는 큰언니가 동생들의 기대랑 정 다른 길로 변해가고 있었을 때 알게 되었으며 그곳이 기가 막히게 카바레 였었던 것이었다.
그가 돈많은 주부들을 울리고 다니는 '제비족'이었는지는 잘 몰라도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전혀 택도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었다.
엄마와 더불어 우리들 또한 큰언닐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이 아니냐 하는 투로 닥달하게 되었었구, 절대로 그런 사람을 큰형부로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부르짖고 있었었다. 큰언닌 한번의 결혼 해프닝이 있어서인지 이번만은 이번만은 잘해 보겠다고 엄마와 우리들 앞에서 애처롭게도 결혼을 구걸하고 있었었다. 하지만 안되는 건 안된다는 우리 식구들 또한 예전처럼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하지 않았었다.
큰언니가 변했듯이 큰언니의 동생들 또한 야몰차게 변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결혼허락을 못 받고 있던 한 밤중에 큰언니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버렸었다.

'외로워 못살겠다. 외로워서 못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