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의 결혼식이 왔다.
진희의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옆에 앉아서,
선애는 뚱한 얼굴로 계속 투덜댔다.
그리고 내려야 하는 눈대신,
진희의 결혼식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하늘...마치 작은 은빛 가루처럼....
어쨌던 경인과 선애는 진희 집에 도착을 했다.
[왜 이렇게 일찍들 왔어? 더 자지...]
모닝 커피를 내 놓으며 진희가 결혼하는 여자 같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새벽부터 사람을 깨우더라, 얘가...일찌기 서둘러야 한다나 어쨌데나...내 결혼식땐 얼렁뚱땅 해 놓고선...]
[또 투정! 넌 우리더러 몇 시까지 어디 미용실로 오너라...이렇게 통보한 애야. 혼자 바쁜 척은 다 해놓고...]
경인의 말에 선애는 입을 삐죽하며 커피를 마셨다.
[기다려, 준비는 어제 다 끝내 놓았으니깐 세수만 간단히 하고 나올께]
[저게 어디 신부니? 언니나 동생이 결혼한다고 해도 흥분되는데 저건 당사자이면서도 저 태연한 모습 좀 봐...속 터져...]
이층으로 오르는 진희의 뒷모습을 보며 선애가 마지막으로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내보였다. 경인은 그냥 살짝 미소만 지었다.
10분 후 진희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계단을 내려 왔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한테 먼저 나간다고 말하고...]
진희는 계단 옆 우아한 디자인의 방문을 가볍게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엄마, 일어 났어요? 나 먼저...! 엄마!]
날카로운 진희의 음성에 경인과 선애가 고개를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희 엄마의 방문 앞으로 먼저 달려간 사람은 경인이었다. 그리고 경인은 온통 하얀 레이스천으로 수놓인 침대 옆 카페트위에 쓰러져 있는 진희 엄마를 보았다.
[엄마! 엄마, 왜 이래요? 엄마, 정신좀 차려봐요!!!]
진희가 엄마를 끌어 안고 계속 뺨을 때리며 외쳤다. 경인은 제일 먼저 생각난대로 119를 불렀다. 진희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진희의 결혼식은 그렇게 깨졌다.
아니, 잠시 보류라고 해야 하나...
선애는 그게 다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좋아라 했다.
그 다음 날 경인은 선애와 함께 진희네 병원을 찾았다. 어머님은 의식을 회복하셨고 경인과 선애를 반갑게 맞았다.
[그래도 며칠은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더라, 민성씨가...]
병실 앞 의자에 앉으며 진희가 입을 열었다.
[평소 혈압이 있어 술 마시는 걸 거의 금지시 하시는 분인데 술을 마시다니...그렇게 경솔한 분이 아니신데...웃기지? 딸을 결혼식이라 너무 흥분해서 그러셨나?]
하면서 진희는 피식 웃었다.
[이게 다, 니가 민성씨랑 결혼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다 알어?]
참고 참았던 그 소리를 선애는 결국 내밭았다. 진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깨어나시고 나서는 아직 이렇다할 말씀도 없어셔. 당신 잘못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니깐...민성씨도 똑바로 못 보시더라]
[그러시겠지...옆에서 네가 잘 위로해 드려]
[......응]
[오늘은 이만 가야겠어.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해. 언제든 가져다 줄테니깐...]
[그럴께.너무 신경은 쓰지마]
돌아서던 경인이 진희를 빤히 보며 살며시 웃었다.
[어머님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것에 대해 사실...안도하는 기분이 들었어. 갈께. 수고해]
진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싱긋이 웃었다.
진희가 병실로 들어서자 누워있던 어머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왜요? 물 드릴까?]
[너...독일의 아버지한테 편지 했니?]
어머니의 갑작스런 질문에 진희는 한순간 긴장된 표정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금지된 과거고 추억이었다. 어머니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알았다는 사실에 진희는 숨소리를 죽였다.
어머니의 가라앉은 한숨 소리...
[초대...할 순 없어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조용히 진희는 변명처럼 그렇게 말했다. 사실 편지가 벌써 도착 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의 결혼식이 끝난 후 도착 할거라고 그렇게 계산하고 보낸 편지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들려 오는 한숨 소리...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에 숨이 막힐 것 같았을 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연애 5년, 결혼생활 10년동안...화라곤 내신 적이 없었던 양반이었다. 그런데 어제 전화로 불같이 화를 내시더군...그런 모습 처음 보았어. 하루하루 네 사진을 보며, 네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보고 싶은 것도 참았단다. 나와의 약속때문에...그러나 네가 결혼하면...그 때는 연락주겠지...그 때는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셨는데...네 아빠는 나와의 약속을 깬 적이 없었는데 난...약속을 지키지 않았단다. 네가 갑작스레 아버지를 보면 혼란스러워 할까봐...]
[......!]
[네 아버지...전화로 우시더라.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면사포 쓰는 걸 꼭 보고 싶었다고...]
어머니의 한숨이 떨렸다. 진희는 미동도 않은 채, 어머니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내가...내가 너한테나 네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그런 생각이 들자 잠이 오지 않더라.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말이다...사랑? 너나 네 아버지는 사랑을 말했지...난 부정하고...진희야, 미안하구나...네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놓곤...정작 너한테는 사랑을 믿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난 너를 위한답시고 한 말이다. 네 아버지보다 내가 네 아버지를 더 사랑한 까닭에 니 아버지는 결혼생활 내내 힘들어 하셨어. 그래서 너만큼은 너를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실수하신 거예요. 민성씨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런데 네 아버지 전화로 난 혼란과 고민에 빠진거다. 내가 과연 잘하는 짓인가...그래서 술이 필요했어...넌 처음부터 김군과의 결혼을 내켜하지 않았지. 알면서도 난 무시했다. 결혼하고 나면 나아질거다...라고]
거기까지 하고 난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티슈를 뽑아 눈가로 가져가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진희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문이 열리면서 민성이 들어 섰다. 병실안의 분위기를 눈치 챈 민성이 잠시 문가에서 머뭇거렸다.
[잘못...들어 온 겁니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민성은 진희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답을 원했다.
[아니요...일 보세요]
진희가 몸을 일으켰다.
[잠시 나가 있을께요]
[희야!]
예전, 어릴때 부르던 식으로 어머니가 그녀를 불렀다. 등을 보인 채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네 판단에 맡기마...]
편안한 음성으로 어머니가 한 말이다. 진희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문에 기대어 서는 순간, 소리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진희의 결혼식이 그렇게 취소되고 한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