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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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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BY 액슬로즈 2003-05-07


[저녁에 갈께...]

조마조마하게 답을 기다리는 경인에게 진희는 그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진희는 6시 조금 넘어서 밝은 얼굴로 들어 섰다. 경인은 손수 커피를 끓였다.

[세월이 변해도 경인이 니 커피맛은 변하지 않아. 늘 그 맛이야]

[거두절미하고 결론만 말해봐. 어떡할거야?]

성격 급한 선애가 얼른 물었다.

[며칠동안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 눈이 오려고 그런가봐. 내 결혼식 때 눈이 오면 참 좋겠다. 그치?]

편안한 얼굴로 진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챈 경인과 선애의 얼굴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런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진희는 가벼이 웃으며 커피를 마셨고, 그 커피잔이 비워져 테이블 위에 놓일 때까지 경인과 진희는 침묵을 지켰다.

[어제 엄마랑 술 한 잔 했어. 내가 이 결혼을 거부하면 어떡 할거냐고 하니깐 우리 엄마가 그러시대? 죽었다 깨나도 그만한 신랑감 없댄다. 나한텐 과분한 사람이래]

[그래서 찍 소리 못하고 그냥 그러겠습니다! 한거냐?]

잔뜩 화난 음성으로 선애가 쏘아붙였다. 경인은 한숨만 내쉬고...

[뭐, 고상한 의사 부인 노릇도 괜찮지 않니? 그렇게 살다가 애 하나 생기면 없던 사랑도 정도 생기겠지]

[넌 괜찮은거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일이야. 니 행복이 우선이라구]

[평생은 무슨 평생! 요즘은 이혼도 유행화 되어 있다는 거 모르니? 놔둬! 평생 후회하며 살게. 어휴, 답답해]

선애가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가 버렸다.

[기집애. 성질하고는...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지 뭐]

[......!]

[경인이 너까지 그러지마. 나 아무렇지 않아. 정말이야. 민성씨, 좀 인간미가 없어서 그렇지 내 속 썩이거나 그럴 사람은 아니야]

[알아...하지만...!]

[니들, 아침에 일찍 우리 집에 와 줘. 엄마와 움직이는 것 보단 니들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세상엔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그리고 그들이 모두 불행하거나 이혼하는 건 아니잖아. 난 행복할거야. 그렇게 살께. 알았지?]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부케 너 받아라. 너도 좋은 사람 생겼잖아]

진희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경인은 웃지 않았다.

[잘하면 우리 동서지간이 되겠네? 너 나보고 형님이라 해야겠어. 얼마나 좋아? 나 막 기다려진다. 꼭 그렇게 되었음 좋겠다, 경인아]



진희가 돌아 가고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재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 경인은 대학 후배들의 자리에 앉아 가볍게 술을 한 잔 하고 있을 때였다. 선애가 와서 알려 주었을 때 경인은 기분이 묘했다. 긴장되면서도 슬그머니 피어 오르는 기쁨 같은 거...

그의 머리가 짧아 보였다. 정리정돈이 잘 된 것으로 보아 이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남자들 기준으로 보면 긴 편이었다. 경인이 다가오자 재민은 입가에 미소를 그으며 기분좋은 눈빛을 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당신은 늘 미소를 머금고 있으면서 왜 내게만 인색한거요?]

[제가 그랬나요? 그랬다면 이유가 있겠죠]

[당신은 마음에 없는 소리 할때마다 눈이 밑으로 향한다는 사실, 알고 있소?]

순간적으로 얼굴이 발개지는 경인을 보며 재민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경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재빨리 잡았다.

[여기 식사도 되는거요? 아직 저녁 전이라...]

[지금 시간이 9시예요. 여태 저녁도 않고 뭐하신거죠]

염려어린 경인의 말에 재민은 싱긋 웃었다.


재민은 경인이 만들어 온 해물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내온 샌드위치 한 조각과 토마토쥬스도 거뜬히 해치웠다.

[형사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게 바쁜가요?]

[그렇다고 한다면...도망갈거요?]

그가 되물으며 웃었다.

[도망 갈 만하면 가야죠. 안 그래요?]

[글쎄...내가 당신을 보내줄 지...그게 자신없는데]

[모르죠. 한달 뒤 당신이 실망해서 먼저 도망갈지...]

그가 나즈막히 소리죽여 웃었다. 그는 웃는 모습이 멋있는 남자였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참! 당신 사는 곳이 어디요?]

[건너 편의 현대 아파튼데 왜요?]

[문 잠그고 다니는 걸 생활화 해요. 가족들한테도 일러 주고]

[전 혼자 살아요]

[그럼 더더욱 조심해요. 항상 확인하는 습관을 잊지 말고. 아파트는 문만 잘 잠그면 별 문제가 없는데 주택이나 원룸 형식의 건물은 도둑 맞는 경우가 많아요]

경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했다. 한 며칠 바쁘다고 하더니...어째 재민의 표정이 많이 지쳐 보인다고 경인은 생각했다. 그러자 안스런 마음이 생겼다.

[다시 들어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오. 오늘은 퇴근해서 오는 길이오. 당신이 보고 싶어서 저녁 회식도 마다하고 온 거요. 기특하지 않소?]

농담처럼, 진담인 듯 그는 그렇게 편하게 말했다. 확실히, 다시 봐도 재민은 편한 사람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김 민성이 떠올랐다.

[저기...김 민성씨는 어떤 사람이예요? 당신과 많이 비슷한가요? 외모 말구요. 그러니깐 성격이라든지...뭐 그런거요]

[그러고보니 민성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군...전에도 말했지만 민성과는 태어나면서 헤어진 사이라, 그리고 만나는 경우가 잘 없었기에 사실 잘 모르겠소. 상대하기가 좀 벅차기는 해도 천성이 나쁘지는 않소]

경인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식 갈거요?]

재민은 당연한 걸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