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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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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BY 액슬로즈 2003-05-05


[......!]

경인은 재민의 고백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몸둘바를 몰랐다.
뜻밖의 고백이며 낯설은 설레임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싫어 하겠는가!

[혹...만나는 남자라도 있소?]

그의 물음에 마음이 반반이었다.
있다고 얘기하라는 거짓말쟁이와 진실을 말하라는 양심이 양쪽 귀에서 경인에게 속삭였다.

[저기...!]

재민이 고개를 저으며 경인의 말을 막았다.

[당신이 망설이는 동안 답은 나왔소. 없소. 그렇지 않소?]

그의 추리에 순간 경인은 자존심이 상했다. 마치 그녀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한 그의 말이 불쾌한 것이다.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직업병이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 사람의 눈빛만봐도, 아니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대강은 진실을 알 수 있어서...기분 상했다면 미안하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뭐하는 거야?...

경인은 자신이 재민의 의도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지능적인 사람이다. 꼭 진희처럼....
경인은 괜한 반발심이 발동했다.

[제게 남자가 있든 없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죠? 정말 있다면 더이상 상관하지 않을 건가요?]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상관이야 하지 않겠지만...아마 상당히 오랫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리겠지...]

하면서 재민은 경인을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고른 치아가 보이는 그의 웃음에 경인의 심장이 철렁하며 두근거림이 자리했다.

[당신은 냉정한 듯 하면서도 순진한 구석이 있소. 처음 만났을 때도 그걸 느꼈소. 그리고 당신은 가식이 없소]

[칭찬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에요]

[알아요. 난 그냥 내 느낌을 말한 것 뿐이오]

재민은 경인의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녀는 많이 지쳐보이고 슬퍼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눈속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그를 안타깝게 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재민을 더욱 목마르게 하고 있었다.

[난 당신과 만나고 싶소. 당신에게 교제 신청을 하고 있는 거요]

[사람을 놀래키는 게 당신의 특기인가 보죠?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날 때마다 전 십년은 감수하는 기분이예요]

[아이러니하군...난 당신을 볼 때마다 십년은 젊어지는 기분인데]

그는 크게 웃었다. 얄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더 얄미웠다.

[그럼 열심히 젊어지세요]

[그 말은 나를 만나준다는 소리요?]

그녀가 한 마디 툭 던지자 그가 재빨리 받아서 한 말이었다. 기가 차다는 듯 경인은 한번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과히 그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험한 감정이었다. 경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이제 퇴근해야겠어요]

그도 일어섰다. 그리고 경인의 팔을 잡으며 자신을 보게 했다. 그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자 가슴이 뛰었다. 잡아 뺄려고 했으나 그가 놓아 주지 않았다.

[답을 듣고 싶소]

진지한 그의 말투와 눈빛에 경인은 싫다는 투정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축이며 헛기침을 했다.

[생, 생각은 해보죠]

[내일 6시에 전화 하겠소. 그 때까지 반드시 답을 줘야 하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요. 이제 이 팔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민은 경인을 품안으로 끌어 안더니 다짜고짜 입술을 포개었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진하고 강하게 키스를 하더니 살며시 입술을 뗐다.

재민은 멍하니 있는 경인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고는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었다.

[고맙소...사실 지금 난 근무중인데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달려온거요. 옷 벗을 각오를 하고 말이오]



며칠동안 경인은 재민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말이 아닌가!
재민은 부모의 희망을 져버리면서까지 경찰일을 택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자신이 보고 싶어 달려 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경인은 솔직히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다음 날 재민이 전화를 했을 때 경인은 일부러 냉정한 어투로,
[딱 한 달이예요. 알아요?]라고 했다.
재민은 껄껄 웃으면서 조만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사건이 터져 당장은 갈 수 없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 가서 힘껏 안아 주고 싶은데...]
라는 말을 덧붙이곤... 그 말에 경인은 혼자 몰래 웃었다.


[참 나!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딱 널 두고 하는 말이야]

선애가 앞에 와 앉으며 놀렸다. 경인은 모른 척 시침을 떼며 시장 볼 목록을 체크했다.

[그만 실실 거려. 손님들이 까페가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오해하겠어]

[말을 해도...! 그리고 내가 언제 실실 거렸니?]

[아니라구? 아니야? 까페 식구들한테 다 물어봐라. 뭐라고 하는지]

[......!]

경인은 선애를 곱게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민씨 너무 자주 전화 하는 거 아니니? 경찰이 그렇게 한가해?]

[샘 내지 마! 너 연애할땐 그보다 더 했어. 너흰 아예 전화기를 안고 살았어. 기억안나?]

[오마나! 연애하는 건 인정하네?]

[너 정말...!]

선애는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상체를 경인쪽으로 깊숙이 숙이더니 묘한 눈빛을 했다.

[말해봐. 너 얼마나 잘해줬길래 재민씨가 너한테 뿅. 갔냐? 우리 신랑 요즘 기분이 다운.인데 한 수 배워서...아야!]

경인은 메뉴판을 들고 선애의 머리를 때렸다.

[아주 매를 벌어요, 벌어! 전화나 해봐야겠어]

[어디? 섹쉬-한 재민씨한테?]

[진희한테]


경인은 진희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넣었다. 그 시간이면 교수실이나 도서관에 있을 것을 알기에.

[뭐해?]

[응...방금 점심먹고 지금은 벤취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중. 넌?]

[나야 하는 일이 똑같잖아...너 결혼식이 3일 남았어. 어떻게...결정은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