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화장도 다됐고 입을 옷도 골라놨으니, 약속 시간 3시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충분하다.
'많이들 변했겠지?'
초등학생이 소풍날 기다리듯 가슴이 마구 설레인다.
이런 감정이 얼마만인지...
삼일전 제방에서 틀어박혀 컴퓨터를 하던 민정이 급하게 날 찾았다.
"엄마! 엄마! 이리좀와봐. 빨리~"
"무슨일인데 저녁하느라 지금 바빠."
"엄마 있지. 저번에 내가 엄마 동창 찾아준다고 했던거. 오늘 그냥 한번 확인해봤는데 매일이 산더미처럼 와있잖아. 봐"
[안녕하세요. 전 문대현이라고 합니다만 70년 졸업생 동문이라서요. 혹시 절 아시는지요?
6학년때 3반이었고, 모두 절 "까불이"라고불렀었죠. 연락주세~]
[야 ~ 반갑다 웬일이니 너 나 몰라?
나야나 니짝궁 송연희.
너 내 짝궁 김은영 맞지?
웬일이니? 오래살다보니 별일이다. 나한테 연락좀해라. 내번호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은영씨. 전 남천초등학교 70년 졸업생 모임 회장 김남우라고 합니다. 70년 졸업생 모임을 활동중인데 대략 40여명 정도 입니다. 이번 1월 30일 정기모임을 갖는데, 바쁘신 일이 없으시다면 참석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날짜: 1월 30일
시간: 3시
장소: 뉴 크리스탈 호텔 커피숍 ]
그밖에도 두세 매일을 더 확인했다.
자신이 회장이라 소개한 김남우라는 사람은 잘모르겠지만 까불이라 불리우던 남자아이는 장난이 심해 매일 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벌을 받던 기억이 났고, 짝궁이었던 송연희의 소식은 정말 반가웠다.
연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도 했는데, 몇일후 정기모임때 불현듯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하는것도 좋은 방법같다는... 마치 초등학교때로 돌아간듯 장난기가 생겨 연락하지 않았다.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진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잊지않고 연락을 해준게 너무나도 고마운 생각이들었다.
그리고 이미 삼십년도 더된 그옛날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머리에서 추억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는 내가 6학년 2학기때 천안으로 전학한뒤로는 연락이 모두 끓어 졌다.
내고향은 서울이다.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고, 우리집은 꽤 유지로 통했었다.
물한번 손에 뭍힌적없던 우리 엄마는 지금 나이가 칠순이 훨씬 넘었는데도 곱다. 가끔씩 내 언니로 보는 사람도 있을정도니...
행복하고 부유하게만 살던 우리집에 불행이 찾아온건 내가 6학년때.
아버지가 하시던 미싱공장에 불이난것이다.
그 불길은 그칠줄을 몰랐고 이틀만에 뒷산까지 훌랑 태워 먹어서야 꺼졌다.
그길로 옷가지만 대충싸서 어머니와 아이들은 천안 외할머니댁에 얹혀살았고, 아버진 다시 제기하신다며, 큰소리 치며 부둣가에서 닥치는데로 노가다일을 하셨지만 워낙에도 고생이란 몰랐던 사람이여선지 중풍이 찾아왔고, 3년을 거동도 못하신채 애를 먹이시다 무지하게 더웠던 여름날 홀연듯 떠나셨다.
똥오줌 못가리고 거동을 못하셨지, 밥도 잘드시고 말귀도 잘알아들으셨다 어디가 특별히 아파보이지도 안았고 그런데도 너무나 홀연듯. 마치 이제 이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으니 떠난다는듯 연기처럼 아무런 말도 예고도 없이 가볍게 떠나셨다.
'이런 동창들 생각하다가 왜 느닷없이 아버지가 생각이났담.'
시계를 보니 슬슬 나가도 될듯하다.
보석함을 열어 진주귀걸이와 목걸이 셋트를 하고, 무스크향 향수를 손목 맥박뛰는 부위에 뿌린뒤 귀뒤에 비볐다.
마지막으로 옷마무새를 고친뒤 화장대 위 거울 바라을 봤다.
??음의 생기는 사라졌지만, 귀품있는 우아함이...
예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에게도 그렇게 보여지길 바랬다.
그리고 오늘 만나게 될지도 모를
내 아름다웠고 가슴 아픈 첫사랑 그 사람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