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자고있는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본다.
사랑스런 딸의 얼굴을 보니 현주의 두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힌다.내 딸,사랑스런 내 딸.
널 생각하면 엄마가 좀더 용기있고 힘차게 살아야하는데
이 엄만 왜이리 나약할까? 널보니 내 결심이 흔들린다.
이런 무언의 외침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더욱 확실한건 사랑스런 딸의 아버지자격이 눈곱만치도
없다는 거였다,남편이.
남편을 처음본 건 소개로 만난 그 찻집에서였다.
현주의 나이 스물 아홉. 그때는 이미 애들가르치는 일도
신물이 날 정도였고 편안하게 그야말로 착하고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만나서 그남자 내조하면서 우아하게 현모양처나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숨보다 사랑하던 첫남자에게 보기좋게 차였던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배신을 때렸던 첫사랑을 잊기위해
미친듯이 선을 보고 미친듯이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현주에겐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다.오년넘게 다닌
속셈학원도 지겨웠고 매일 머릿속엔 딴생각으로 건들거리는
5학년 애들도 웬수로 느껴졌다.
그 희망의 돌파구는 바로 다름아닌 '남자'였다.
스물 아홉의 여름 .
그야말로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콱콱 막힐 정도였다.
" 이상하다 .바로 여기 비발디커피숍이라고 했는데
아직 안왔나? "
현주는 다시한번 화장실에 가서 옷매무새를 고쳐본다.
이만하면 어딜가도 빠지지 않는 스타일이다.
피부는 우유빛처럼 맑고 머리는 약간곱슬이라서 드라이하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겼지만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을 위해서 엄마가 예쁜 투피스정장
파스텔계열의 핑크빛 정장을 차려입으니 역시 옷이 날개란
생각도 들었다.
' 그남잔 어떤 남자일까? 정민기.민기 민기..'
며칠전 어떤남자에게 한아름의 장미꽃을 선물받은 꿈을 꾼현주는
예감이 좋았다.분명 이남자다라는 느낌이 드는 좋은남자가
나타날 것같았다.
그때였다.
약속한시간이 십분쯤 지났을까.
어떤 구릿빛의 건강한 남자가 헐래벌떡 커피숍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모습이 단번에 그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현주는 시침 뚝 떼고
애꿎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숍엔 혼자 앉아있는 여자가 현주밖에 없었다.
다들 동행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남자가 바로 구릿빛피부의 남자가 현주에게 다가왔다.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 저 혹시 .. 이현주씨 아니세요?
오늘 소개받기로한 .."
현주는 아닌데요 하면서 장난을 치고싶었지만
(현주는 이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한장난하는 선생님이었다.)
어느새 "네 맞아요.혹시 "정민기씨?"
그러자 그남자는 아니 정민기는 안도하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이거 핑계이겠지만
제가 처음부터 큰 실수를 했어요."
앞으로 현주는 좋은인연이 될거 같은 생각에
그남자의 콧등위의 땀을 살짝 훔쳐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남잔 선자리에 정장차림이 아닌 청바지에
푸르스름한 티를 입고 그 건강한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기분이 오묘했다.
"어쩌면 이남잔 나쁜자식의 (옛애인) 기억을 깨끗이
치료해 줄 수도 있을 것같아."
현주는 세상에서 가장 참한 아가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