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규희와 종로에서 만났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규희는 벌써 나와있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화장이 조금 진해져 있었다.
저번주에 봤을땐....좀 괜찮아 보이더니...
또 시현이와 다퉜는지...
주문을 하고 물을 먼저 마셨다.
매장에서 바로 오는거라....목이 좀 탔다.
컵을 내려놓는 날 보며 규희가 물었다.
"우진선배....너네 회사에 들어갔다며...?"
"응....."
"너 좀 ....그렇겠다....."
나와 우진선배의 일을 다 알고 있는 규희였다.
아직도 내가 선배에게 미련있다는 것 까지...
"당황스러웠겠어....어때..?잘 지내...?"
"그냥 그렇지 뭐....이젠 거의 한달이 다되가....첨엔 좀 당황되고
그랬는데...지금은 ....그냥 그래.."
".....선밴....잘 지내지...?"
"응....원래 눈썰미 있고 추진력 있잖아....일도 빨리 배운 편이고...적응력도 좋고....잘해.."
"여전히 여자들에게 인기많고...."
웃으며 말하는 규흴 보며 난 고갤 끄떡였다.
요즘엔 내 또래와 밑의 아이들까지....선배에게 관심이였다.
점심시간에 보면...난리가 아니다.
그전에 인기있던 강대리는 이젠.....2순위로 밀려났다.
주문한 스파게티가 나왔다.
포크로 돌돌말아 한입 가득 넣었다.
칠리소스 매운맛이여서 인지....매콤함이 죽였다.
규흰 나와 달리 이태리 음식을 않좋아 하는데..워낙 스파게티 팬인
날 위해 한달에 한번은 먹어준다.
내가 워낙 바빠 자주 볼수 없고....밤 작업이 많아 저녁 챙겨먹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자기가 양보한다고 말하는 착한 규희였다.
"어때....우진선배 사귀는 여자 있는것 같아...?"
"글쎄....사실 나 선배랑 별로 못 부딪쳐.....난 거의 매장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잖아...바로 퇴근이 잦고.....말 나누기가 쉽지 않아.."
"네가 피하는 건 아니고...?"
"피하긴 내가 ...뭐하러...?"
시선피하는 날 보며 규흰 뭐라더 할 말이 있는것 같더니....그만두기로 했는지....대답이 없었다.
소다수로 손을 뻗치며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넌 얼굴이 왜그래...어디 나가는 애모양...."
"그냥..바르다 보니까...좀 진해졌어...너무 튀지...?"
"좀....시현이와 무슨일 있어...?"
"말하고 싶지 않아..."
"또...왜...?"
규흰 가슴이 답답한지 ....소다수를 다 비웠다.
시현인 이번에 졸업반인데...취직않고 대학원 간다고 하더니....
그일로 다툰건가...?
더 물어보려구 했지만....규희가 마음이 복잡한것 같아 그만두었다.
저녁을 다먹고 후식으로 커필 마셨다.
헤이즐넛....향이 좋았다.
"넌..아직도 일이 좋아....회사다니는 것 말야..."
규희가 물었다.
".....그냥....다른사람들 보단...만족하며 다니지...넌...또 힘들어..?"
"응....난 빨리 결혼해서 집에 들어앉고 싶어...아이낳서 키우고 싶다고...."
정말.....이번엔 한 몇달 조용히 지나간다 했더니..
규희는 회사를 자주 옮겨 다녔다.
길면 6개월 정도 다니고.....빠르면 한달....
얼마전엔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켰는데.....밤에 너무 늦게 끝나서 시현이 만날 시간이 없다며 그만두었다.
이번엔 둘째 형부소개로 법률회사에 다니고 있는데....거의4개월이 다 되어간다.
역마살이 꼈는지...한곳에 오래 못 붙어 있는 성격이다.
노상 빨리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아직 학생인 시현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잘 알면서...
매번 빨리 시집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젠 그 시집소리좀 그만 듣고 싶었다.솔직히....
학교땐 안그랬는데....
졸업후에 많이 변해버린 규희였다.
자주 안만나서 ..거리가 생긴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역삼동 매장에 들렀다 바로 퇴근한다고 팀장에게 말했다.
전에 해 두었던 디스플레이가 손님들이 자꾸 만져 엉망이 되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간혹 매장의 직원들이 고쳐놓기도 하는데.....
우리 컨셉과 어긋나게 해놓는 일이 많아...돌아다니며 체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파트는 20~30대의 커리어 우먼 의상인데...정장풍은 아니고 케주얼에 가까운....히피풍의 여성스러운 옷이다.
천 소재도 세무가죽이나..니트류가 많다.
가방에서 구두...악세서리 까지....완전 코디가 가능한 상품이다.
디스플레이도 하면서 난 소품을 디자인 한다.
의외로 내가 만들어 내는 소품이 인기가 좋아...거기에 대한 인센티브도 따로 받는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매장내의 직원들에게도 인기여서....적게 생산된 소품은 고객들에게 까지 돌아가는 일이 없을 때도 있다.
가방을 챙겨 어께에 매고 나가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팀장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복도로 나왔다.
잘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네...여보세요....?"
"나야...재혁이..."
"어..선배....웬일이야....?"
"오늘 저녁 약속있어...?"
"아니...지금 매장나갔다가 바로 퇴근이야.....무슨일 있어..?"
"좀 보자...8시쯤.....미펠에서....나올수 있어....?"
"......그럴께....그럼 이따봐..."
무슨일일까...
재혁선배가 날 보자고 하구.....
호주로 유학갈지 모른다고 하더니....
윤재혁.....고교선배다.
최우진하고 동창이고....
둘이 만나긴 좀 그런데....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매장에서 일이 일찍 끝나 먼저 미펠로 향했다.
미펠은 우리의 모임 아지트이다.
커피 맛이 짱나는 레스토랑인데....주인이 노랑머리의 영국인 이다.
우유를 썩어 타주는 홍차가 일품인 집이기도 하다.
한국말도 잘하는...우아한 귀부인 '루비'는 우리보단 몇년 더 연배지만...말이 잘통하는 친구같은 사이다.
미펠로 들어서자 익숙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했다.
엔틱한 가구와 그림들로 가득찬 미펠은 영국 귀족들의 거실을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들어서자 낯익은 알바 여학생이 아는척 해 왔다.
자리를 잡아 들어서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재혁선배가 벌써 온건가...?
"여기야....한유리...."
날 부른건 소라선배였다.
그 옆으로 우진선배,연화선배....모두 모여있었다.
그럼 재혁선배가 모둘 부른건가....?
우진 선배도 공장에서 바로 퇴근한건가....
스케줄표에 보니까...그렇게 적혀 있던데....
안보는 척하며....선배의 하루 일정표를 눈여겨 보는 나의 응큼함.
외면하고 싶은 첫번째 순위이다......
그쪽으로 가서 앉았다.
"재혁이 전화 받고 나온거지....?"
자릴 비켜주며 소라선배가 물었다.
난 그렇다고 고갤 끄떡였다.
"니들 ...같은 부서라며....매일 보겠다..?"
연화선배가 물었다.
"매일보긴...한유리가 얼마나 바쁜데....대학다닐 때 보다 더 바쁜것 같아....일주일에 두세번 보나..?"
우진선배의 말이다.
"그렇게 바빠....?"
"좀...우린 유행에 민감하잖아....흐름을 알아야 하거든...긴장을 늦출수가 없어.....우진 선배도 바쁘잖아...."
"그래도 우리회사에서 제일 바쁜사람은 한유리 너야....모두들 인정하잖아....일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구..."
우진선배의 말에....모두 웃었다.
사실 선배의 말이 맞는 말 일수도 있다.
난 회사에서도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타입이라...다른 직원에게 불편을 줄 때도 있다.
자중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그게 쉽지 않았다.
디자인을 끝내면....가끔 공장에 가서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한다.
천도 직접 떼러가고......모두들 나더러 피곤하게 산다고 도 한다.
하지만 난 즐기는 거니까.....힘든줄 모르겠다.
"너 재혁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소라선배가 물었다.
"글쎄.....언닌 알아...?"
"아마 프로포즈 할 걸....호주유학 같이 가자고...."
"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아니고....
몇번 그런 의중을 비추긴 했지만...우린 사귀어 보지도 않았느데...
갑자기 ....무슨 소린지....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단 말야...재혁이 맘 모르고 있었던거야...?"
"무슨소리야...?재혁선배와 내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소라선배의 말에 난 황당함도 느꼈다.
"나이가 있으니까 집에서 약혼이라도 하고 떠나라고 압력이 대단한것 같던데....너한테 말한적 없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재혁선배 여자친구 없어....?"
"요근래엔 없었던 것 같아.....우린 재혁이가 네 얘길 자주 하길래.둘이 무슨 얘기가 오고간줄 알았지......"
선배의 말에 진정이 안되었다.
하필....우진선배가 있는데서....
재혁선배가 정말 그런일로 날 보자고 한거면.....
갑자기 자리가 불편해졌다.
온다던 선배는8시를 조금 넘어서야 왔다.
그사이 우린 저녁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