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966

그녀의 마지막 남자


BY khl7137 2002-12-31


영이 첫 딸을 낳았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하면서도 영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영의 첫 딸을 보면서 영의 결혼을 인정했다. 영이 행복하면 그만이라고...탈없이 세월을 엮어가면 그걸로 된거라고...

그리고 영과 나는 같은 해 같은 달,
영은 둘째 딸을 나는 첫 딸을 낳았다. 그렇게 영과 나의 인생행로는 순탄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영은 언제나 내가 한숨을 돌렷다 싶을 때 뒤통수를 치는 재주를 지녔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반년쯤 흘렀을까...
영이 나를 집으로 불렀다. 사심없이 편하게 영을 만나러 갔다. 안 본 반년사이 영의 몸은 10킬로 가까이 더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영의 표정은 지치고 지쳐 있었고 눈동자엔 생기가 없었다. 예전의 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무언의 물음을 던졌고 이미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아닌가.
영은...

남편은 외아들이야 위로 누나가 둘 있고 시어머니는 큰시누집에서 애들을 봐주면서 살고 있어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마음은 편하더라
첫 애를 낳았을 때 시어머니는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가더라 이유는 아들이 아니라는거지 그런 건 상관이 없어 그런데 백일 때 올라 온 시어머니가 내려가실 생각을 안한다는거야 그것까진 좋아...

[그런데?]

기가 차서...남편 몸이 허약해 보인다고 직장을 관두라는거야 너무 멀어서 안된다고 더 화가 나는 건 아무런 대책없이 남편이 직장을 관뒀다는거지 그것뿐이게? 둘이서 방에 앉아 고스톱을 치더라 직장 구하라는 소리도 직장 구할 생각도 없이... 우리 시어머니, 남편 밥 빨래 손수 하신다 아침 점심 저녁 밥을 꼭 새로 지어서 올려야 돼 바빠서 우는 애 봐주지 못하면 시어머니가 봐 줄 수 있는 거 아니니? 방에서 꼼짝 않으셔 남편이 애 좀 볼라치면 아범아 하면서 방으로 쏙 불러 들이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열 받더라 시어머니가 듣든말든 남편에게 소리쳤어 손가락 빨게 생겼다고 직장을 구하든지 길가에 나 앉든지 하라고...시어머니도 남편도, 집에 돈이 쌓여 있는 줄 알아 남편 월급으로 한달 사는 것도 버거웠는데...그걸 몰라

영의 긴 한숨이 그 고충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난 남편이 그렇게 무능한 사람인 줄 몰랐어 시어머니 말이라면 양잿물도 마실 사람이었어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남편에게 누가 선뜻 일자리를 주겠니? 몇 달을 그렇게 시어머니와 희희낙낙하며 지내다 둘째를 임신하자 일자리 구하러 다니더라 직장없인 둘째를 낳지 않겠다고 했거든...애 욕심은 많아 가지고...
우리 시어머니는 어떤 줄 아니 돈도 못 벌어 오는 남편을 옆에서 보면서도 끼니마다 고기 반찬이며 생선이 있어야 하고 옷은 또 왜 그렇게 사 입는다니 노인네가...친정에 손 벌리는 것도 한 두번이지...
시어머니 요구를 무시했더니 시누들한테 험담이나 하고 ...
일하고 돌아 온 남편 씻자마자 붙들고 앉아 또 험담하고 죽는다고 엄살피고..
거기다 남편은 툭 하면 직장 때려 치우잖아 적성에 안 맞대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니? 끈기도 없고 용기도 없고 배짱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시어머니보다 남편이 더 싫어지더라
둘째 낳은 것도 후회가 돼
시어머니는 또 딸이라고 대놓고 불만이야

그런 일이 되풀이 된 모양이었다. 꼬장꼬장 독한 시어머니 상대 하는 것만도 벅찬데 철부지 남편까지 간수할려니 오죽했을까 영의 살은 모두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영의 남편이 4년동안 직장을 옮긴 게 다섯번이고 하루 다니다 관둔 적도 있단다. 영은 차라리 자신이 나가서 일하고 남편이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게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장 생활 3개월 하다 관뒀어 한달 월급이 고스란히 식비로 나간다면 믿겠니? 시어머니와 남편은 종일 음식을 시켜 먹었거든 짬뽕이니 통닭이니 족발 보쌈 찜 종류를 애가 제대로 먹기나 하겠어? 애가 불쌍하더라 집안 꼴이야 둘째치고...그래서 관두고 다시 남편을 취직시켰어 아버지가 다니는 택시 회사에...

영의 생활을 엄마에게 들은 아버지가 영의 남편을 회사로 불러 들인 모양이었다. 기사 생활을 평생직으로 여기고 살라고...그렇지 않으면 이혼 시킬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신 것이다. 그렇다고 영과 아버지의 관계가 회복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영의 분노가 많이 풀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 남편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나 아니면 그런 남자 누가 데리고 살겠니...이혼 생각도 했어 이혼하면 난 더 잘 살수 있는데 그러지 않은 건...아이들 때문이야 남편도 애라면 꿈뻑 죽고 애들을 아빠없이 키우는 건 못할 짓일 것 같아서...아빠 사랑은 받게 해 줘야지...남편에겐 솔직히 정이 없어 처음엔 미안해서라도 잘 해줬는데...남편이 첫 남자가 아니었다는게 참 많이 미안했거든...

[...시어머닌?]

시누네...내가 당신 뜻에 움직여 주지 않으니깐 더 까탈스레 구는 거 있지 그래서 열 받으면 시누네 가는데 아마 내일이면 또 올라 오실거야 딸도 사위도 이제 장모없이 사는 게 재미있고 편하거든...눈치를 주나봐...시어머니가 좀 별나야지

여자 팔자는 남편에게 달렸다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나는 영을 보면서 그것을 실감했다. 영은 이제 사는 것에 대해 무뎌져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무너질 듯 지쳐 있는 영을 그나마 지탱시켜 주는 건 알토랑 같은 영의 자식들이었다.

돌아 오는 길이 못내 쓸쓸했다. 외로웠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숨도 무거웠다.
내가 영을 위로할 수 있는 건 가끔 불러내 함께 차를 마시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르자 영의 몸이 홀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의 얼굴은 점점 더 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삶에 지쳐서 그럴까...
모두 그렇게 생각을 했다.

영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또 한번 내리쳤다.
햇살이 유난히고 밝던 날 나는 영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영안실은 생각외로 조용했다. 영의 남편은 충렬된 눈으로 나를 반겼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영의 영전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간암이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이 술을 즐긴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담배를 즐겼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영의 죽음앞에 나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았다.
영이 죽었다는 것만이 그 사실만이 전부였다. 영이 그렇게 내 곁을 떠날 줄 그렇게 빨리 나를 떠날 줄...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영을 보내야 했다.
며칠을 나는 앓았다.

그리고...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영의 편지였다.

영은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영은 밖에서 해결했다.
밤이면 몰래 빠져나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그것이 영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고 점점 강도가 세진 모양이었다. 빈 속에 거기다 스트레스를 안고 마신 술이니, 피워댄 담배니 그 몸이 견뎌 냈을까...
아무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단다. 혼자 아픔을 견디고, 그 아픔을 오히려 즐긴 것이다.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날 밤에도 영은 술을 마셨다. 담배를 피웠다.

영은 잘 있으라고 마지막에 썼다.
한번씩 어쩌다 한번씩 자신의 새끼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봐 달라고 썼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썼다.
두번째 마누라를 사랑한다고 썼다.

하늘을 우러렀다.
웃고 있는 나의 영이 보이는 듯 했다.





이제...끝입니다.
제 친구가 그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