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선택 **
<그>
어느덧 새벽의 푸른빛조차 태양빛에 녹아들며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사무실로 내려갔다.
'남주'가 걱정되었다.
내말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것이다.
지난번 통화도중 평소의 그녀와 다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곤
무슨일이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몇번을 망설이며 말머리를 꺼냈다.
"오빠..."
"응"
"만약 여동생이 이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것두 아이까지 있는 여동생이..."
"음..."
"말리겠지 일단은...하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큰거던지 작은거던지
참을수없을만큼 불행하다고 느끼며 사는것보다는 외로움을 택하는것이 나을수도 있지.
편모,편부슬하의 아이보다 부모의 불화속에 자란 아이가 더 나쁘게 된다고도 하자너.
물론 남자도 아니고 여자이니까 많이 힘들겠지.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하지 특히 아이문제도 중요하고 그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내려진다면
굳이 살라고 강요하지않겠어.
그리고 인연이라는거...
너가 전에 말했잖어. 어느 글에선가 사람들의 오른손 새끼 손가락에는 보이지않는 빨간실이 메어져있다고
그 줄을 찾지못하는 사람도 있고 찾았다고 해도 잘못 엉키어서 잠시 만나다가
결국은 진정으로 자기와 메어진 사람을 찾는다는 말.
난 그말을 믿어.
엉키어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아. 다시 찾을수도 있는 거야.
진정으로 메어진 자기의 인연을..."
답을 하고 난 길게 숨을 쉬었다.
마치 나에게 말하고 있는듯...
"그래...정말 그럴까?..."
그녀는 나른하게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이었다.
"남편이 20일 동안 연락이 없어. 핸드폰도 꺼놓고 일부러 안 받는것 같아."
"왜? 무슨 사고라도 난거 아니야?"
"아니..."
"그럼?"
"오빠..."
"응?"
"만약에 내가 이혼 한다면 오빠 부담스럽겠지..."
그녀는 부담스럽겠지라는 말에 의문형으로 끝을 올리는것이 아니라 단정형으로 끝을 내렸다.
"왜? 왜 그렇다고 생각해?"
"아니...전에 아가씨 혼자여서 부담스러워잖어."
"남주야.."
"응?..."
"나...너 사랑해. 깊이깊이...알지 내 마음?"
가슴밑바닥에서 깊이깊이 파묻고 잊었다고 생각한 불행이 일시에 올라옴을 느꼈다.
왜 그녀와 일찍 만나질 못했는지...
왜 그리 쉽게 내 감정을 포기하고 결혼을 해버렸는지...
"나 어쩌면 이혼할지 몰라. 아니, 이혼하게 될꺼야. 그런데 이혼하면 아이들 뺏길거야.
남편이 협박아닌 협박으로 아이들을 내밀고있어. 친정에서도 아이는 주라고
그리고 다시 시작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데 나 그러기 싫어 그냥 아이들하고 살고싶어.
그냥 이렇게..."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녀의 지갑속의 가족사진에서 얼핏 본 그녀의 남편에게 순간 살의를 느꼈다.
그녀는 항상 자기 남편의 이야기를 잘했다.
좋은 점도 나쁜점도..
하지만 그녀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항상 행복했다고 말하는듯했다.
난 싫었다.
그녀의 모든것에 질투가 생겼다.
지나간 추억까지도 질투를 느끼는 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내 새끼 손가락에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메어져있는 빨간실은 이어져있다고...
우리 둘을 위해서...
난 조용히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혼하면 집에서 다시 결혼하라고 하신다며?"
"응..."
"나...그자리에 서면 안될까? 니 옆에...대신 너 나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오빠....나 그런뜻으로 말한 것 아니였어...그냥..."
그녀는 놀란듯 말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마음 약하고 눈물 많은 그녀이지만 난 이제 말하고 싶었다.
아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나..우리 만나는거 바람이라고 생각하기 싫어.그럼 길은 한가지일거야.
사람들 많은 대낮에도 떳떳하게 너의 손을 잡고 다니고싶어. 그리고 말하고 싶어.
이렇게 착하고 이쁜 여자가 내 아내라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내가 또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주저하고 싶지않았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 나 역시 지치고 혼자가 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단지 지금 얼마남지않은 결혼생활의 연장선에서 그녀를 만난것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난 후회했다.
조금 더 있다가 그 말을 꺼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그녀는 혼자가 되질 못했다.
나 때문이였다.
내가 가정을 버릴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