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별장 여자와 회사 000
음식이 정갈하게 나왔다.
"깔끔하네요..맛 있어요. 선생님의 입맛이 역시..."
"맛 괜찮네요. 여기 말고 요 아래 동네 구인리라고 있거든요. 거기 가면 연변에서 시집온 여자가 하는 "연변만두집"이 있는데 별미대요."
"선생님은 식도락가신가봐요^^"
흐믓한 맘으로 여유 있게 식사시간을 가져 보는게 얼마만인가. 혼자서 먹는 밥이란 모래알이다. 그래서 혼자사는 사람들은 인스탄트 식품으로 얼른 먹어치우려 하는지도 모른다. 대충 속을 채우고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심사이랄까.
손바닥이 마추쳐야 소리가 나듯, 식사라는게 가족끼리 오손도손 둘러 앉아 음식평을 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곁들여야 제 맛이 나는 것이건만 너무도 가족이라는 이름을 망각하고 살아온 내겐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감격을 주나보다.
"순미는 우리회사 사정을 잘 아는것 같은데.."
"네..아,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말씀드리려고 했다면....
"오래지 않아서 회사가 큰 변화가 있을거예요. 선생님도 틀려지시겠죠"
"그럼..?."
"네, 말하자면 그 회사는 제 회사도 되거든요. 말하자면 투자를 좀 했다고 할까.."
"그러면 대주주..?"
"그런셈이죠. 초기 자본금을 제가 댔고, 그 쪽에서는 기술력을 댄 것인데...다만, 조건이 있었어요. 회사가 어느정도 정상궤도에 오르면 연구와 경영을 분리하기로 했었거든요. 그게 옵션이라면 옵션이었겠지요.."
"아...!"
이해가 가긴 했지만 더 이상 내게 필요한 것은 정보도 아니고 나의 자리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아닌가. 그녀는 나의 의중을 알아 차린듯 말을 이었다.
"제가 지분을 이제 선생님에게 넘겨 드리려고 해요."
"아..굳이 그럴 필요가....."
"아니예요. 이제 선생님은 제게 새로운 시작이거든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로움으로 가는 새 길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녀가 상당히 진지해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능력이...."
"아니에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죠. 제 친구가 너무 힘들어 하거든요.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으면 다 감당하기는 너무 벅차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성박사는 대단한 연구광이예요. 그분은 분명 큰일을 해 낼꺼예요. 그건 그 사람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제 친구의 능력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 란같은 여자라면 해내겠지. 꿈의 여자다. 비젼으로 가득찬 여자임에 틀림 없다.
그녀의 환상이 지나 간다. 정말 은밀한 곳에서 솟아 오르는 샘같은 여자다. 성박사를 그림자처럼 보필하고 그가 남자임을 확인시켜주는 초록스커트의 환영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 분명 무언가 터뜨릴 여자야!++
그런 확신을 오늘 별장여자가 재확인 해 준 것뿐이다.
우린 식사를 마쳤다. 창살을 지나는 햇살처럼 환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솜처럼 웃는 그녀가 내 사람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직도 현실 같지 않아서 안절부절하는 나를 본다. 아무 것도 가진게 없을 때는 갈무리 할 대상도 없었건만 이제 내게 주어진 소유에 대해 적절히 대처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겠지.
여러 여자들과 시간을 나누었고 다정한 대화를 했었지만 그들이 내게 원하는 건 잠시의 순간적인 즐거움이었고 만나면 언제 버릴 것인가에 대한 부담을 갖는걸 느끼곤 했었다.
돈많은 사모님도 있었고 기둥이나 방패막이가 되주기를 바라는 여자도 있었지만 그들은 늘 내게 요구하였고 무언가 자신의 전유물로 이용하고자 했지 않은가...그러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핑계를 대고 돌아서 그럴싸하게 떠나가지 않았던가...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요..?
"아, 말티재 넘어서 요즘 새로 생긴 고시촌이 생겼거든. 거기 한번 둘러보고 가지. 그리고 그 아래 가면 녹두장군이 거사를 일이켰던 장안이라는 동네가 있는데...거기 볼거리가 좀 있고...."
"'네... 어서 가요"
우린 손을 잡고 음식점을 나섰다,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대궐터라는 이 마을의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적혀 있다.
세조 대왕이 피부병이 나서 속리산으로 휴양을 올 때 날이 저물어 이 곳에서 1박을 하고 갔다해서 대궐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작은 동네지만 왕이 쉬어 감직한 마을임이 틀림 없다. 참 좋은 풍광 속의 마을에서 순미와 난 정말 맛난 음식을 먹고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뒤 차를 타고 말티재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잔설이 싸리버섯처럼 나무에 눈꽃을 피웠다. 토끼라도 금새 뛰어 갈 것 같은 풍경 속으로 우리의 차가 빨려 들어간다. 눈부신 오후 마음이 눈처럼 희어져 죄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을 곁눈질 한다.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티재 정상에 차를 세우고 산을 향해 섰다. 그녀가 춥다는 흉내를 내고 내개 다가온다.
"순미!"
"선생님!"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우린 서로를 놓지지 않으려는 듯, 아니면 뜨거운 신방을 차리고 싶은 마음으로, 또는 활활 타오르고 싶은 아쉬움으로 엉켜지고 있었다. 몸이 달구어 진다.
그녀를 벤취로 안고 간다. 그리고 그 위에 그녀를 누이려 하자 그녀가 움찔 놀란다.
"차거워요. 어서 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일으켜 세우고 차로 태운다. 그리고 시동을 건다.
가자. 따뜻한 방으로 가자. 오로지 그 생각이 나의 피를 돌렸다. 그녀도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악셀레이터를 밟는 발이 좀은 격해져 있었다.
"선생님 찬찬히 가세요.."
그녀가 신음처럼 말을 던졌다.
"음, 알았소..."
금새 갈목리고 접어 들자 은밀하게 사랑을 나눌 쌍들의 집이 나온다.
우린 소변이 마려운 사람처럼 그 집으로 차를 급히 몰아 넣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안내자가 허릴 굽힌다.
"좀, 쉬어 가게요"
순미와 난 가이드의 뒤를 쫄래거리고 따라 간다
곧 우린 불꽃 속으로 들어가 또 한 그릇의 밥을 먹을 기대로 가슴이 박동치고 있음이 분명 했다. 남녀의 은밀한 시간은 참으로 신이 부여한 선물이라더니....
우리가 옷을 벗을 방은 가장 구석진 방이었다.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허리가 너무 잘룩해 보였다. 곧....곧... 까치가 울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