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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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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


BY 김隱秘 2003-01-02

회의 탓인지 마음이 가난하여진 나는 별장을 찾아 나섰다.

"여보세요. 별장이죠?"
"네,누구신가요?"
"예...저..."
"아, 네 선생님이시네^^"
"뭐하시나...요?"
"그냥.^^"
"지금 시간 있지요?"
"네, 시간 많지요.. 어디든 갈께요 ㅎㅎ"

목소리가 너무 밝다. 기다렸다는 듯도 하고...
어디를 갈까? 새로운 장소를 찾아 단둘이 있고 싶다.

"그리로 갈께요. 기다리세요. 드라이브나 하게요.."
"네..어서오세요 기다릴께요.."

대덕 연구단지를 가로지르면 들이 보인다. 용산 관평리를 지나면 송강이다. 송강은 예전에 참 조용하고 운치 있는 마을이었는데...지금은 아파트가 구름을 이고서 있고, 세상의 오염된 사람들로 인해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머지 않아 행정 수도가 중부권으로 옮겨지면 송강이나 둔곡, 박산, 구룡리 등 정말 산천초목이 좋은 자연부락이 문명에 먹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구니 고개를 넘으며 난 별장여자를 기대하게 된다. 참으로 나에게 굴러온 호박 같은 여자. 넝쿨째 굴러온 여자다. 오늘은 내가 한 번 쏴야지. 어디로 갈까...
속리산이나 갈까...그래 청정지대 속리산이나 가보자....

차는 이내 별장에 닿았다. 달구새끼가 그물 속에서 노는 모습이 보이고 강아지가 꼬리를 친다. 낮이 좀 익은 놈들은 이제 짓지 않는다. 혹시 내가 이 집 주인이 되는 것을 알고 있어서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면서 피식 웃어본다. 남자는 여자를 늘 소유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더니...

"어서 오세요."

그녀가 나들이 할 준비를 하고 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야, 타!"

'야 타!' 라고 말한대서 야타족이라고 한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나도 그를 웃겨보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의 농을 받아 주며 차로 오른다.

"별일 없었지요?"
"네, 기다리는 것 말고^^"
"그래요..오늘 속리산 좀 가려고 하는데..?"
"네, 좋지요.."

나는 차를 몰았다. 옥천 방향으로 나서면 판암동이 나온다. 예전에는 바위가 많았던 탓에 천근성을 가진 포도나무 과수원만 보였던 시골이 이젠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로 메워져 번쩍거린다. 아직도 더러 남은 포도밭들이 있다. 철뚝이 지나는 곳에 도회지와 시골이 만나는 동네다.

세천유원지를 지나면 내가 잘 다니는 길이 나온다. 방아실쪽으로 해서 회남으로 넘어 속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여름에 이곳을 지나면 강원도 산골의 냄새보다 더욱 기분 좋은 산들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청정지대다. 차도 어쩌다 한대씩 뵈고, 대청댐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말 그대로 일품 경치다. 길도 산도 늘 자연만을 연출하는 고장이 좋아서 난 좀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이 곳을 이용하곤 했다.

이윽고 회남대교가 나타난다.

"물좀 보고 갈까요?"
"그러세요, 좀 쉬었다 가세요.."

참으로 오랜만에 자유스러운 여자를 차에 태운 내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그래, 이 여자를 꼭 잡고 일생을 가야지...
아마도 오늘은 정말 아름답게 내게로 다가올 것 같았다. 별장여자 순미도 소녀처럼 활짝 웃고 있다.

이제부터 대박 행복이 터질거다. 사람답게 사는거야...태양이 청솔 위에서 구름을 데리고 놀고 있는데 대청댐은 내 고향을 품속에 넣고 거기서 침묵한다.
다시 차는 보은을 향해 병원리를 지나고 있는데 성인용품 판매라고 써붙인 휴게소 노점상 차주변에 나이 먹은 신사가 어른 거리는 것이 보였다.

"맛있는거 먹을까요?"
"네.."말티고개 밑에가면 대궐가든이라고 갈비가 아주 근사하거든요"
"네, 저 갈비 좋아해요"

그녀의 입술이 더욱 붉어지는 것 같다.
계절 탓에 주말이지만 한산하다. 이내 말티고개가 눈 앞에 얼른댄다. 말티재에 오르기 전에는 저수지가 있는데 그 저수지 밑에 그 음식점이 있다. 오래 전에 외속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을 때 먹어본 갈비 맛이 도시에서 먹는 것과는 영 판이하고 맛이 달랐기에 그 기억이 참 좋다.

"어서오세요.."

바깥 주인인듯한 털복숭이 남자가 우리를 맞는다.
빈집이다. 손님도 아무도 없는 한가함을 느끼며 우린 조그만 방으로 들어 갔다. 겸상을 하고 낮에 앉아 보기는 처음이다.

생각보다 이쁜데가 많은 여자구나 그런 감정이 나를 기쁘게 한다. 볼 수록 정이 드는 사람이 있고 만나면 만날 수록 싫증나는 사람이 있다던데.. 이 여자, 순미는 정말 만난지 얼마 안되지만 만나면 만날 수록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여자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여자가 왜 나 같은 사람에게 다가온 걸까?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하겠지..그러나 우연은 애초부터 없었고 다 정해진 수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게 인생이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 났다.

"순미! 안아주고 싶네.."
"아이, 낮이에요.."
"알지,그냥 한번만 안아줄께..."

나는 그녀에로 다가 갔다. 쑥스러워 하는 그를 나는 안았다. 그녀의 포근한 체온이 나를 덥힌다. 이내 뜨거워질 것 같았다.

"선생님, 뜨거워요 ^^"
"알았소. 우선 식사나 합시다."

노크소리가 나고 물컵을 든 여자가 들어 온다. 그리고 우리를 참 좋겠다는 듯 쳐다보는 것인지,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인지 묘하게 웃는다. 웃는 여자의 볼이 볼그스레하다. 메뉴판을 내 놓는 손이 좀 거칠기는 해도 참 곱다. 두 여자의 손이 대비 된다. 순미의 손이 많이 세월에 그을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 세월이 사람을 다듬잖아..세월이 훈장을 달아 주잖아. 주름살 훈장을, 흰머리칼 훈장을, 초라한 훈장을, 쓸쓸한 훈장을 달아 주잖아....
생각중에 바라보는 내 손도 주름이 져 있다. 나이값을 해야 할텐데...갑자기 그런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나. 철이 드나....그래 철 들때도 되었지...속에서 그렇게 자문자답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순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괜히 놀란 내가 아무말이나 하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 이상한 발표가 있었거든.."
"네....발표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이 여자는 알고 있었네...그런 확신이 들었다. 난 그녀가 날 다 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쩐지 내가 작아지는 걸 느꼈다. 철들면 작아진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