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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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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khl7137 2002-11-04

아직은 마주하기 싫은데,
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는 10월의 마지막 날 민규가 책방으로 들어섰다. 정리를 막 끝내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에 불쑥 민규가 들어 선 것이다.
[커피 한 잔...줄 수 있겠어?]
자신없는 목소리로,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표정으로 민규가 희경을 바라보았다. 단호하게 거절해서 쫓아내야 한다고, 희경은 이성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으나 행동이 빨랐다.
이건...날씨 탓이야 쓸쓸한 가을 밤인데다 비마져 내리고 있잖아.
따스한 차 한 잔이 절실히 생각나는 가을 밤이라는 걸 희경 또한 동감하면서 민규를 안으로 초대했다.
청바지를 즐겨 입던 활기찬 젊은 민규 대신 양복 바지에 티를 입고 점잖은 점퍼를 걸치고 있는 민규는 이제 남자가 되어 있었다. 희경은 될 수 있는 한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말없는 가운데 커피를 탔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머리보다 희경의 손이 먼저 민규의 식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희경도 민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오디오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희경이 책방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오디오 켜는 일이고 제일 나중 마무리 하는 일은 오디오 꺼는 일이었다.
우 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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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 속으로 걸어가는 내겐 우산이 없어요
이제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 같지만
하얀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

[네가 곧잘 부르던 노래군...]
[슬데없는 걸 기억하고 있군요.]
회상하 듯 부드럽게 말하는 그에게 희경은 차가움이 감도는 음성으로 내뱉었다. 여전히 민규를 외면한 채.
희미하게 미소를 띄며 민규는 커피를 마셨다.침묵이 흘렀다. 그것이 숨막히는 듯 희경은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동안 둘은 할말을 잊었다. 아니, 하고픈 말이야 태산이겠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어디 사는지...물어도 될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날...많이 미워하고 있구나. 그래...용서가 안 되겠지.]
민규는 자신으로 인해 많이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한 여자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망가뜨린 여자의 꿈을 생각하자 명치 끝이 칼로 도려내 듯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