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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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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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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lhj 2002-09-08

그의 회상. - 그녀와의 마지막 날
그녀와 마지막 만났던 날은 기억하기 싫은데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나. 기분나쁠만큼 선명하게 바로 몇시간 전에 일어났던 일마냥...
웬일이냐고? 그렇게 물어도 죽어도 말 안하겠다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냐고?
가을바람. 청명하고 맑기가 이를데없는 바람. 사람맘 갈갈이 갈라서 각기 다른곳으로 몰고가는 바람때문이라고 해두지.
하여튼...
헤어지려는 기미를 눈치못챈건 아니야. 매일 전화를 하던 사이가 하루를 거르고 이틀을 건너뛰고 그 간격이 점점 더 길어지더라. 내가 연락을 하면 그렇게 통화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때 핸드폰이 있길했냐 이멜이 제대로 있길했냐 겨우 삐삐가 대중화 되려는 그런 때였는데.
눈치를 챈거지. 다른 사람에게 맘을 뺏기고 있거나 나에게 싫증이 났나보다. 그러면서 아니길 바랬지.
난, 그녀를 사랑했거든.
아주...
많이.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지만 속은 완전히 다 탔지. 이성이 도저히 참을수 없을만큼이란 생각이 들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거야. 오늘처럼.
영등포의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12시에 만나기로 했어. 난 11시부터 나가서 기다렸어. 혹시라도 그녀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면 어떻하니? 늦여름의 9월3일 한낮은 덥잖아. 정확하게 정문의 시계바늘 두 개가 포개질 때 그녀가 보이더라. 이어폰을 꽂고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아마 노랠 따라 불렀었겠지.
나를 보고도 표정이 안 변하는거야. 가슴이 내려앉더라.
휴... 이러면 안돼는데...
-잘 지냈어?
잘 지냈냐니, 너같으면 잘 지냈냐는 소리가 나오겠냐 그럼 그 상황에서 뭐라 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다만 하여간 기가막히는데 내가 뭐라했는줄 아니
-음
음이라니 그럼 멀쩡하게 사귀던 여자가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데 잘지냈다고 그게 정신나간 소리지. 그런데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앞서 걷는거야. 평소에 느린 걸음이던 여자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걷는데 신들린 사람 같더라
그렇게 많은 사람 틈에서 한번도 안 부딪히고 걸어가는거야. 나? 정신없이 따라 걸었지 툭툭 사람들과 맞닿으면서 눈으로 쉴새없이 그녀를 ?으면서 말야. 거의 30분은 그렇게 걸었을꺼야.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두 발을 모아 서더니 고갤 돌려 나를 쳐다보대 헌데 그때 왜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녀 이마의 땀만 보였을까? 왼쪽 볼을 타고 내려오던 땀만 커다랗게 보이는거야 우끼지.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그녀를 지나 바로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갔어.
알겠지만 영등포의 골목들은 지저분하잖아.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에선 퀘퀘한 지린내가 나더라구. 문을 밀고 한발 들여놓으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흘러간 팝송이 나오고 있었어. 딱 한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와 젊은 여자. 그런데 어찌나 들러붙어 앉아있던지 갑자기 실내가 덥게 느껴지더라구.
여하튼 우린 마주보고 앉았고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난 아이스티를 시켰지.
주문을 하고났는데 할 말이 없는거야. 무슨 말이든 해야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확 서먹한 기운이 돌더라구. 밖에선 할 일이 많았잖아. 마주오는 차를, 자전거를, 사람들을, 거리에 판을 벌린 노점상들을 피해야하니까 몰랐는데 조용한 곳에 들어가니 눈조차 어디다 둬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
그동안... 하면서 말을 꺼내는데 그녀가 갑자기,
- 여기요
하면서 종업원을 부르더니
- 음악좀 바꿔주세요
하는거야 그다지 흔쾌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군소리 없이 테잎을 바꾸는데 이번엔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가 나오는거야. 고개를 젖히더니 다시한번 사람을 불러
- 이걸로 틀어주시면 안될까요
하는데 보니까 gun's and roses. 너도 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란거.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음의 변화도 거의 없는 느린 발라드였는데 나를 만나더니 변했어. 나중엔 나보다 더 락에 열정적이었지.

잠깐만 김경호 노래가 나오네

음악이 바뀌고 커피가 나오니까 소파 깊숙이 몸을 묻더라구 정확하게 3곡이 끝나니까 몸을 일으켜 빤히 내 얼굴을 보더니
- 그만두자
어느정도 예상을 했던 일인데도 내 머리는 빈 깡통 같았어. 울음도 웃음도 아닌 것이 자꾸만 터져나오려 했고 주변의 모든 것이 확 서버린 느낌. 내 몸을 돌고있던
피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오려는듯한 기분. 무슨 말인가를 되받아쳐야 하는데 이상한 것들이 한꺼번에 내 입을 틀어막는 것 같았어. 분명 예상을 하고 있던 일이었는
데..... 우리의 5년 사랑은 여기서 끝인가?
후......
거기까지야. 어떻게 차값을 지불했는지 어떻게 그 커피숍을 나왔고 그녀와 헤어졌는지는 기억안나, 아 나오다가 길가의 빈깡통을 발로차 길가의 차에 맞히곤 낄낄거렸던게 생각난다. 그 다음 어디에도 그녀의 기억은 없어.
왜 그녀를 잡지 않았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