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안대고 썼어요..아부지"
아버지는 사람의 바른 심성은 무릇 바른 글씨에서 비롯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지라 자식들이 한글로 쓰는 숙제는 반드시 아버지한테 검사를 받아야했고 네명 자식중 막내인 아이의 글씨만이 항상 삐뚤 빼뚤이었다.
전날도 변함없이 아버지의 숙제 검사에서 꾸중을 들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국민 전과를 놓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ㅇ'을 쓰고 나서 'ㅣ'를 쓸차례에 이르러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10센치 자가 눈에 띄었다.시험삼아 자를 대고 똑바로 그은 자음'ㅣ'는 아버지가 원하던 교과서 글씨 그대로라 너무나 감격스러운 아이의 입에서는 단숨내가 나며 '하-"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스스로 발견한 이 훌륭한 방법에 놀란 아이는 이제부터 모든 줄긋기는 자를 사용하기로 했다.
백묵으로 그린 땅따먹기 줄이 안보일 무렵 근처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는 퇴근을 했고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매양 하던대로 숙제 검사가 시작됐다.
"이게 뭐야? 봉이!! 너 자대고 글씨 쓴거냐?
아이의 차례가 돌아와 검사를 하던 아버지는 큰 소리로 화를 냈다.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가족의 기분까지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아버지여서 나머지 가족들은 성난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절부절했고 그 상황을 만든 아이와 눈이 마주칠때면 눈을 가로로 내려 째려 보았다.다음 날,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선생님도 모르는(모른척 했던지) 자 대고 쓴 글씨를 어찌 알아 차렸는지 아부지는 귀신인가보다라고 중얼거리며 공책을 들여다보다 앉은채로 잠이 들었다.아이를 깨워 점심을 먹이려던 어머니는 펼쳐진 공책을 들여다봤다.
"에구.. 자를 대고 쓰려면 똑바로나 대고 쓰던지..
줴다 설 날 가래떡 썰어 논 마냥 어슷 어슷 누워 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