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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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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당나귀 2002-03-13

1.........
"왜?"
발신자 번호를 보고 난 줄 알았을테고, 그래서 그렇게 묻는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던지는 왜라는 짧은 물음은 전화를 건 사람을 참으로 맥빠지게 하는 한 마디다. 어쩐 일이니, 혹은 무슨 일이니 같은 문장같은 질문도 있는데, 엄마는 대뜸 왜라는 짧디짧은 질문을 던진다.
"그냥 전화했지, 뭐."
"그냥 왜, 이유가 있으니까 전화했을 거 아냐?"
엄마는 항상 내가 엄마에게 전화한 이유를 묻는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말 그대로 그냥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라는 감상에 싸여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누른 적도 별로, 아니 아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내가 이유가 없다는데도 엄마는 내게 재차 전화를 한 이유를 묻는다.

이렇게 되면 난 없던 이유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유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 전화 건 이유라는 걸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꿈에 엄마가 보이길래,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해 보는 거야."
"꿈에? 왜 어떻게 보였는데?"
꿈에는 미래에 대해서 어떤 예지를 해주고 있다고 굳게 믿는 엄마는, 사실 엄마는 꿈이 잘 맞는 편이기도 해서 꿈 속에서 누가 보이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현실에서도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생기는 편이긴 하다, 내 꿈에 대해서 더 묻는다. 엄마와는 달리 내 꿈은 거의가 개꿈인데도 불구하고 난 엄마에게 내 꿈을 얘기해야 한다.
"엄마랑 두런두런 얘기하는 꿈이었어. 별거 아니야, 정말. 그냥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를 한 거라니까 그러네."

꿈속에서 엄마는 내게 서운타고, 어쩜 딸이라는 애가 전화도 없냐고 날 꾸짖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꿈에서 엄마가 내게 서운타면서 막 뭐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한다는 건 마치 내가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것 같았고, 내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더욱 집요하게 내 꿈에 대해 묻는다. 뭘 그리 꼬치꼬치 따져 묻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줄 수는 없는 걸까. 결국 엄마의 잘도 들어맞는 일명 예지몽이라고 하는 꿈들 덕분에 난 꿈에서 엄마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심문 아닌 심문을 당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어야 했다.

"건 기억이 나지 않고, 그냥 얘기하는 꿈이었어."
"그래."
나는 말하고 싶지 않았고, 엄마는 굳이 알고자했던 내가 전화를 건 이유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주 짧은,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난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을 순간 느꼈다. 결국 난 그냥 전화했던 거라는 말을 끝에도 거듭 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내가 아무런 화제거리가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말인가.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데 이유라는 것이 꼭 꼬리표처럼 달랑달랑 붙어 있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