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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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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인터넷 연재 소설 =


BY asa3535 2001-12-30

너무도 할일이 없는 어느 날, 소일거리를 찾아 정처없이 방황하고만 있었다. 손톱, 발톱도 깍아보고 면도도 해보고 이발까지 해봤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항상 심심해질 때면 어김없이 자기 주변을 정리하는지라 이제는 방 청소까지 해본다. 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그런 후에도 심심함이 남아 있으면 광까지 내본다. 전혀 내 방 같지 않은 모습의 청소 후 내 방은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로 광채가 난다.
그런데 창문 틈으로 한 줄기 햇살이 침대 밑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하긴 그 침대 밑을 청소하지 않은게 꽤 오래되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침대 밑을 청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 몇 개의 동전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 심사도 있었다. 왜 오래 동안 한 곳에 있던 가구를 들어내면 그 밑에 먼지틈에 쌓인 동전 몇개가 항상 있잖은가. 나는 500원짜리가 있길 바라며 침대를 옆으로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 밑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하지만 동전은 보이지 않았다. 내심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왠 일회용 파란 라이타가 있기에 위로가 되었다. 라이터 하나에 300원이니 300원 벌은 셈 티기로 한 것이다.

먼지를 닦아내고 침대를 원위치 시켰다. 구슬 땀을 닦으며 담배 한대를 입에 물었다. 나는 침대 밑에서 발견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녀석은 오랫만에 자시늬 주둥이에서 화염을 발사해냈다. 파란 몸에서 붉은 불을 내뿜는 모습의 색채가 다소 이채로왔다.

땀 흘린 뒤, 일을 마무리 한 뒤 잠시 참아두었던 담배를 피는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렇게 맛있는 담배를 마치 금강산의 맑은 공기라도 되는 듯 흠뻑 들이마시고 내뱉는데 자꾸만 그 라이터로 시선이 가는게 아닌가. 내가 구해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애착이 갔다. 나는 녀석을 손에 쥐고 둘러보았다. 안에 들은 액상가스도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었다.

내가 산 라이터인지, 아니면 술집에서 빌려온 건지(라이터에 업소명이 없으므로 이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도 아니면 친구에게 빌려서 그냥 내가 먹은것이든지. 어쨌든 그 녀석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세월을 그 컴컴한 침대 밑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 비추던 날에 한 줄기 햇살로 인하여 나에게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해 내었다. 그 녀석의 몸에는 스티커가 붙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제조년일도 나와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의 생년월일은 '?'이라는 특수문자만이 찍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회사명은 '타임머신'이었다. 무척이나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나는 옆에 있던 라이터와 비교해보았다. 분명 보통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 라이터는 여기저기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보통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은 단지 엉뚱한 회사명과 제조년일일 뿐이었다.

나는 재빨리 컴퓨터에 앉아 타임머신이라는 회사를 검색해보았다.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써넣을 때 내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이것이 진짜 타임머신일지도 모른다'라는 얼토당토한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검색결과는 나의 이런 상상력에 믿음을 주었다. 왜냐하면 검색결과, 타임머신이라는 라이터 제조회사는 존재하지 않게 때문이었다.

나는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다시 그 파란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았다. 불빛 또한 다른 라이터의 불빛과 다른 점이 없는 그 라이터. 결국 나는 웃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난 어떤 사람이 이상한 스티커를 만들어 장난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담배 한대를 다 태우고 나서 내 눈이 피곤에 지쳐 스르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오랫만에 청소를 한 까닭일까. 기분은 상쾌한데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천장을 응시하며 나른한 기지개를 폈다. 그 순간, 과거에 잊혀질듯한 기억의 필름 하나가 내 대뇌에 영사기로 쏘여지듯 회상이 되었다.



그러니깐 내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였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강남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노인이 라이터를 팔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노인의 행색은 너무 초라했다. 길고 흰 수염에 다 ?어져서 오리털이 다 빠진 구깃구깃하고 더러운 파카에 100년은 넘게 입었을 만한 한복바지(여기 저기 꿰맨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앞창이 다 나가서 샌들의 모양을 하고 있는 군워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는 것이었다. 또한 사람들은 그의 라이터를 사지 않았다. 그 더럽게 때가 낀 손에서 라이터를 사면 병이라도 전염이 될거라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인지 사람들은 그를 피해 다른 칸으로 이동도 하고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신문을 보는 척 하고 자는 척도 하고 그랬다.

어느새 그 노인이 내 앞에 당도했다. 나 또한 그의 그런 몰골을 보고 얼굴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내 옷깃을 끌어당기며 라이터를 사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손을 치우게 하기 위해 그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너무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흰 눈썹 아래로 광채나는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금의 모습은 노인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눈빛으로 보아 노인 가면을 벗겨내면 너무도 고상하고 귀족적인 어느 청년일것만 같았다. 그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1000원만 주시면 이 귀한 라이터를 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배가 고파요."



그의 입에서는 1000년 동안 입을 닦지 않아 여러가지 음식물들이 부패한듯한 역겨운 냄새가 나왔다. 나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갑에서 얼른 1000원을 꺼내 그에게 주고 어느 파란 라이터를 갖게 되었다.



"그 라이터를 갖게 되었으니 당신은 필히 멋진 모험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역이 되자 그는 황급히 전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인파에 묻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 라이터를 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젠장, 라이터를 1000원에 사다니. 이 바보!'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양재로 향했다.

과거의 회상이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가고 난 뒤 나는 그 라이터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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