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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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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BY 안개 2001-11-29

늘은 아파트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어제 골목길에서와 육교 밑에서의 작업이 끝났으므로 오늘은 학교 옆 담장에서 기다릴 것이다.
학교 옆 담장 끝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막아서 설치해 놓은 작은 꽃집이 있다. 도매가 아니라 아침부터 바쁘지도 않은데다 요즘은 새학기나 행사가 많은 오월도 지났으므로 꽃집 주인은 일찍 나오지 않는다.
간이로 둘러 쳐 놓은 비닐막을 들치고 건물 뒤쪽으로 가자 꽃을 꽂아놓는 커다란 고무통이 보인다. 고무 통에 걸터앉자 머리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간다. 비가 오려는지 흐리다.
후래쉬를 준비해 오길 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자니 눈이 빠질 것 같다. 잠시 후 산뜻한 베이지색 잠바를 입은 그 남자가 나타났다. 봄이라고 옷을 바꿔 입었나보다.
어디가 적당한지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을 힐끗본다. 들킨것처럼 가슴이 뛴다.
너무도 놀라 앉아있던 고무통에서 내려 깊숙이 몸을 수그린다.
이쪽으로 오고있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내손에 땀이 흠뻑 배어 있다.
천막을 들추는 소리가 난다. 뭔가를 집는 것 같다.
내 손에 힘이 빠지고 카메라를 놓칠 것 같아 줄을 꽉 잡았다. 조용하다.
천막위로 살며시 머리를 들어올리자 주차해 놓은 포터 옆에 시든 카네이션 몇 송이를 들고 있는게 보인다. 저 쪽에서 일,이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한 손에 신발주머니를 달랑달랑 흔들며 걸어온다.
어느새 난 카메라 렌즈를 열고 줌을 당긴다. 찰칵.찰칵.

손님, 이천 백원입니다.
가슴에 제비 세 마리를 새긴 이름표를 단 안경낀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언제쯤 들어갈까요.
지갑에서 이천 백원을 꺼내며 물었다.
같은 시내니까 내일이면 들어 갈꺼에요.
아가씨가 일어서며 영수증을 준다.
품명 : 사진
무게 : 227g
가격 : 2,100 원
검게 코팅된 우체국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내 발걸음이 갑자기 밀려든 햇살에 휘청한다.
사진을 받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송우섭의 아내 심재숙의 몫이다.
알고 있지 못한 남편의 모습에 충격도 받겠지.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든지 이혼이라도 하든지 그건 그들 몫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나 아내가 왜 댓가를 받아야 하나? 그러나 아빠나 남편이란 명분은 아무 걸림이 없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비하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는 단지, 아직도 자라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 있는 내 빈약한 가슴과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는 내 자궁, 그리고 그 남자 때문에 받았을 어린 상처들을 대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