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가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밀고 들어온다.
뜨거운 방바닥에 누워 맡는 아카시아 향기라.
이상했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편이 내 위에서 사정할 때의 냄새가 난다. 그럼 저게 밤꽃 냄새인가?
사방이 온통 하얗다. 아기한테는 신선한게 좋다고 하는데 불을 약간 내려야지 싶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도 안됐는데 벌써 배가 고프나...
전자렌지에 우유병을 살짝만 데워 볼에 대본다. 따끈하다. 손바닥 사이에 끼고 거품이 일지 않도록 굴렸다.
조금 늦자 얼굴이 벌개지도록 운다. 현명한 경희는 영양을 생각해서, 그리고 미리 젖 뗄 걸 생각해서 삼일주기로 모유와 우유를 번갈아 먹인다. 우유로 돌아서면 만드는 시간을 못 참고 이렇게 자지러지고 또 모유로 돌아서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운단다. 아직 한달 된 아기는 제 엄마를 가리지 못한다. 아기의 우유 빠는 소리가 힘차다. 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다. 요즘 들어 가장 부러운 게 경희가 젖먹이는 모습이다. 나오지도 않는데 이렇게 빨면 어쩌라구, 아이구 이놈 힘도 좋네. 그럴때의 경희는 평소답지 않게 무척 소박하다.
자, 따라 하세요, 하나, 두울....
내가 그 방에서 몇까지 세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뭔가 차가운 기구가 내몸을 벌리고, 움직이지 마세요.
배가 아팠다. 허리도 끊어지는 것 같았고...꾸우욱,꾸우욱...힘들게 뭔가가 몸에서 빠져 나가는걸 느끼고 깨어나니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방은 따뜻했지만 추웠다. 내가 왜 이곳엘 혼자 왔을까 민수씨가 바쁘다고 하면 옆집 아줌마라도 같이 오자고 할걸.
간호사가 오더니 약을 주었다. 일주일 동안 샤워하면 안돼요. 집에 가셔서 밑에 잡히는거 잡아 빼시면 돼요. 생리가 나와도 곧바로 관계를 가지면 또 임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남편도 동의를 했어요?
형식적인 질문을 하던 간호사가 감정없이 주의 사항을 말했다.
발이 후들거려 신발을 제대로 신을 수가 없었다. 부슬 부슬 비가 왔었다. 우산이 있어서 다행히 울고 있는 내얼굴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들어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를 주문했다. 국에 넣을 건데요 반 근만...
집에 와서 풀어보니 고기가 반쯤 녹아서 붉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마 미역국에 고기를 넣을 순 없었다. 왜 자꾸만 눈물이 흐르던지.
남편한테 말을 안한 건 잘한 일일까?
모르겠다.
아이가 배가 부른지 기분좋게 입을 오물거린다. 입 가장자리에 묻은 우유를 닦아주니 손이 가는 방향대로 혀를 내밀었다.
태어났으면 니 누나야.
지금쯤 아랫니가 두 개쯤 났을지도 모르고 그애를 위해서 쌀가루를 풀어 이유식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목이 메인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금새 눈물 방울이 아이의 턱받이로 떨어진다. 아이를 안아 등을 두드린다. 이 느낌. 몸에 확 와 닿는 이 느낌.
아이가 트림을 하자 젖 비린내가 난다. 난 정말 간절히 딸을 원했다. 언제쯤 이렇게 이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경희가 올때가 되었는데..
실밥을 뽑으러 간 김에 친구를 만나고 온다고 했다. 엄마가 알면 기함을 하실꺼다.
불좀 내리면 안돼? 꼭 이렇게 안해도 된데요. 이게 뭐야. 오월에 땀띠나 나구.
경희가 이불 밖으로 양말을 벗은 발을 내 놓으면 엄마는 기겁을 했다.
그래도 이것아 다 너를 위한거여. 땀 쭈욱 빼서 산후 조리 해봐라. 몸에 있던 나쁜 기운이 다 밖으로 나오고 얼굴이 뽀얗게 되니께.
이번만은 엄마도 양보하지 않았다. 기분좋은 실랑이가 날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한다. 그걸 보는 난 암담하고 슬프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작은딸 부기 빠지라고 좋은 호박 고를 때 결혼한지 칠 년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큰딸 생각은 안했을 엄마가 서운하지만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다.
아기 옆에서 뭔가가 반짝한다. 경희가 늘상 들고 있는 손거울이다.
언니, 나 얼굴 좀 빠졌어?
아침에 일어나면 그 애의 인사다.
거울 속에 우울한 얼굴이 있다.
눈썹은 축축이 젖었고 눈이 빨갛다. 머리 끈 밖으로 삐져 나온 윤기 없는 머리카락 끝이 파삭하게 갈라져 있다.
손 바닥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까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