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냐.
바닥에 깔린 오래된 장판의 무늬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말했다.
손가락이 지나치게 말랐다. 목욕을 해서 뽀얗게 빛날 유라의 얼굴이 바닥에 비친다.
실핏줄이 엷게 비치는 유라의 피부, 아직 더 자리 잡아야 할 그애의 부드러운 팔 다리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도 만지고 싶어졌다.
그애의 신발을 신어 본 적도 있었다. 신문을 집기 위해 허리를 숙인 내 눈에 무언가 얼핏 반짝했다.
작고 높은 그애의 신발이었다. 가느다란 은빛 줄이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기만 해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발을 넣어 봤다. 들어갈 때 힘들긴 했어도 보기보다 내 발에도 맞았다. 한번 걸어 보려고 움직이는 순간 뒤뚱 몸이 휘청거렸다. 신발 바닥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었다. 유라는 그걸 신고 잘도 걸어다녔다.
출근하기 전에 유라가 자는 방문을 열어 보았다.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아직 안일어 났나? 손잡이를 비틀어 보았다. 다행이 잠그지는 않았다. 오래동안 사람이 들지 않은 방이 따뜻했다. 빛이 들지 않아 불을 켤까 하다가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거실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애의 다리 부분을 비추었다. 솜씨 좋은 사람이 데생연습을 해 놓은 듯 적당히 명암도 들어갔다.
전날의 아슬아슬하던 끈은 기어이 한쪽이 어깨 밑으로 흘러 내려 있었다.
더운지 보라색 이불 밖으로 내놓은 다리가 투명하도록 하얗다. 쓰다듬고 싶다. 치마자락이 말려 올라가 엉덩이께에 걸쳐진 팬티가 살짝 내보였다. 아직 엄마 보호에 있어야 될 아이였다.
엄마 몰래 친구들이랑 미팅을 하고 비싼 청바지를 안사준다고 몇 끼니 밥도 굶고 그래야 어울릴 나이였다.
아직 어디 가면 안된대. 꼭 집에 있고 밥 찾아서 먹어. 그리고 집에서 이 옷 입고 있어.
메모지와 옷을 방문앞에다 놓았다. 현관문을 잠그는 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
퇴근할때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라를 혼자 두고 출근을 하면 어떡해. 아니면 일찍 오던지...
남편은 대뜸 소리를 높였다.
유라? 그 애 이름이 유라였나. 그러고 보니 아직 그 애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옆에 있던 실장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럼 어떡해요.
남편이 소리를 지르면 주눅이 든다.
애가 없어졌잖아. 어떡할 꺼야.
가슴이 쿵 했다.
어머, 어떡해요.
남편의 기세에 그 애가 없어진게 정말 나 때문인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집으로 가니 남편은 현관으로 들어서는 내 손목을 잡아끌며 마치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는 여편네 취급을 했다.
그냥 답답해서 바람 좀...
자정이 다 되어서 들어온 유라는 예의 그 원피스와 샌들을 신고,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냐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