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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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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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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매미 2001-09-12

-3-


"아, 맞다. 우리 집 잔치하는 거지?"

"잔치?"

할머니가 번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을 커다랗게 뜬걸 보니 깜짝 놀랐나봅니다.

"잔치라... 그래, 잔치구나! 그래. 우리 영미 똑똑하구나. 어찌 알았누..."

"영미 똑똑하지? 할머니가 거짓말 한 것까지 다 알아. 헤헤헤"

우와,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어깨가 으쓱거립니다.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사실은 일어났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년 전 동네에서 잔치가 있었습니다. 개도 잡고 돼지도 잡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었습니다. 그 날은 여름이어서 햇빛이 너무 따가웠습니다.

그래서 현아네 아빠인 이장님이 마을에서 잔치가 있을 때마다 사용하자며, 500원씩 거둬서, 마을공동 천막을 사왔었습니다. 저 천막이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에서 먹은, 엄청나게 맛있던 육개장도 기억납니다.

나는 마당에 있는 천막을 보고 진작에 오늘이 우리집 잔칫날이란 걸 알았습니다. 마을사람들도 잔뜩 왔고, 맛있는 음식냄새도 솔솔 풍겨오는데, 모를꺼라고 생각한 할머니가 바보입니다. 내가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란 걸 할머니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야, 신난다. 맛난 거 많이 먹겠다. 할머니, 돼지고기 삶은 거 있어?"

"저... 돼지고기는 없단다. 대신 머리고기 누른건 있는데, 그거라도 먹을라누?"

"응!"

"이쿠, 다 씻었네. 이제 닦고 옷 입자!"

할머니는 구석구석 물기하나 없이 닦아줍니다.

"나, 많이 컸지? 엄마가 다 컸다고 그랬어, 할머니"

"그래! 오늘 보니 참 많이 컸구나. 그래두 아직은 좀 더 커야 하는데... 이게 맞을라나 모르겠다. 어디 한번 입어봐!"

"이게 뭐야?"

"영미 새 옷이야. 얼른 입어라"

"진짜? 와 신난다"

오늘 정말로 잔칫날인가 봅니다.

할머니가 주신 옷은 좀 특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지금 입고있는 옷이랑 모양과 색깔이 똑같습니다. 명절 때 많이 입는 옷인데,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입는 옷이라구 할머니가 그랬던 것 같은데, 뭐지? 아, 맞다! 한복!

예쁘기는 하지만 할머니가 입고있는걸 보자 입기가 싫습니다. 분명히 막내삼촌이 노인네꺼 입었다며 놀릴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 옷보다는 입학식 날 입으려고 사다 논 옷이 더 예쁜 것 같은데... 잔칫날이니까 예쁜 옷을 입고싶습니다.

"이거 안 입을래. 학교 갈 때 입으려고 산 거 있잖아. 할머니, 나 그거 입으면 안돼?"

"철딱서니 없기는. 이것도 새거야"

"싫어, 이건 할머니들이나 입는 옷이잖아. 잔칫날이니까 예쁜 거 입을래"

"애구, 애구..."

"아이, 할머니. 그거 응? 응?"

"이것아... 알았다. 그 옷이 그렇게 좋아?"

"응, 알록달록하잖아. 헤헤"

다람쥐처럼 쪼르르 건넌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살며시 다락을 열고 보자기를 꺼냈습니다. 보자기 안에는 내 보물이 들어있습니다.

분홍색에 빨간 줄무늬가 있는 블라우스와 빨간색에 분홍색 줄무늬가 있는 주름치마와 빨간색에 리본이 달린 구두가 가지런히 들어있습니다. 참, 미키마우스가 발목에 새겨진 하얀색 스타킹과 치마랑 똑같은 넥타이와 리본머리핀도 있습니다.

엄마가 큰맘먹고 백화점에서 사준 것이라서 굉장히 비쌉니다. 읍내 시장에는 이렇게 예쁜 옷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지금껏 맨날 만져만 봤지 입어보진 못했습니다.

오늘이 잔칫날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아니면 입학식까지 한달이나 참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먼저 스타킹을 입고 블라우스를 입고 치마를 입었습니다. 아직 넥타이랑 머리핀은 혼자서 하지 못합니다. 머리 손질은 항상 엄마가 해줍니다. 머리를 빗어서 묶어주기도 하고, 양갈래로 갈라서 따주기도 하고, 하여튼 엄마는 내가 바라는 모양대로 척척 만들 수 있답니다.

어제 밤늦게 자고 있을 때 엄마랑 아빠가 왔다니까,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엄마, 엄마. 나 머리 묶어 줘"

엄마를 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저를 쳐다봅니다. 아마 내가 너무 예쁘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