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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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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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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매미 2001-09-11



-2-


할머니가 가마솥을 열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가마솥에는 뜨거운 물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자, 씻자. 깨끗이 씻어야 한단다."

"목욕하는 거야? 아앙, 싫어. 춥단 말이야"

추석날이나 설날이 되면 이렇게 부엌에서 목욕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추석날도 아니고 설날도 아니고 제삿날도 아닌데... 왜 목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2월이라 공기가 많이 쌀쌀합니다. 지금 목욕하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는데...

"할머니! 왜 갑자기 목욕하라고 그래? 나 목욕 안해"

"할미 말 들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란다"

이렇게 말하고는 억지로 옷을 벗겨서는 함지박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할머니는 조금은 뜨거운 물을 머리부터 끼얹었습니다.

"아이, 뜨거워!"

"저런, 뜨겁구나"

찬물 한바가지를 더 섞었더니, 따뜻한 게 딱 알맞습니다. 처음에는 살갗이 톡톡톡 올라와서 닭껍데기처럼 오돌도돌 했는데, 지금은 기분이 참 좋습니다.

"따끈허지?"

"응, 넘 좋아. 헤헤"

"그래? 할미가 비누칠해줄까?"

딱딱한 세숫비누로 머리를 문질렀습니다. 손가락으로 비비자 거품이 부글대며 올라옵니다. 비누거품을 손으로 만지면 느낌이 이상합니다. 미끌미끌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꼭 엄마 살결 같습니다. 그런데, 좀 지나면 다 사라져 버려서 속상합니다.

"할머니, 오늘 무슨 날이야?"

"왜 묻누."

"할머니가 그랬잖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그래서 깨끗이 씻어야 한다며?"

"할미가 그런 소릴 했누?"

"치, 할머니는 금방 말하고도 모른데... 정말 무슨 날인데, 할머니"

"그건... 애들은 몰라도 된단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거나 귀찮으면 꼭 어리니까 몰라도 된다고 말합니다. 다음달이면 나도 학교에 갑니다. 내 방에 들어가면 엄마가 사준 책가방이랑 공책이랑 필통이랑 예쁜 새 옷도 있습니다. 우리 영미가 많이 커서 학교에 가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보고 항상 어린애라고 합니다. 엄마 말처럼 이제 다 커서 알껀 다 아는데도 할머니는 거짓말을 합니다.

"치,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

"누가? 할미가? 할미는 거짓말 한 거 없는데?"

"아냐, 할머니 거짓말했어. 오늘 무슨 날이잖아. 그치? 맞지?"

할머니 얼굴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면 눈이 웃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 다리를 닦는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