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모지와 같은 여자의 자궁은 여자의 삶을 원래대로 복귀시켜 놓았다. 여자라는 사실은, 남자라는 사실은 생명의 씨를 주느냐 아니면 그 씨를 받느냐의 차이라고, 인간도 영장이기 이전에 종족을 보존시켜야 할 동물이라고. 여자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모지의 땅 시베리아 처럼 여자의 가슴이 휑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지만 않았다면 여자의 미래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여자가 고개를 떨구었다. 여자의 욕설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남자의 고개가 돌려진다.
"나랑 같이 갈까"
"..."
"너랑 가고 싶은 곳이 있어"
"미안해 하지마. 아이는 날 떠났어. 너도 붙잡지는 않을꺼야"
"너한테 미안한 거 없어, 우리 싫다고 떠난 거야. 너가 아니고, 우리"
"애쓰지마"
"정우야... 너 많이 힘들구나"
"에이 씨팔. 우리가 왜 이런 얘기를 하니. 가... 성가시니까 가"
"...."
"나 만난거 후회하지? 나만 아니었으면..나만 아니었으면..."
"정우야"
남자가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저려왔다. 여자는 이를 악 물었다. 남자는 여자만 아니었어도 더 크게 될 사람이었다고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던가. 여자의 화장대 서랍에 넣어놓고 간 것은 굳이 애써 확인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